마음공간/생각의 구름

오랜만에 + 여행의 의미

담연. 2018. 4. 9. 00:29

양미니와 오랜만에 진득하게 함께하는 일요일을 보내었다.

그러다 양미니가 요즈음 블로그를 한단다. 

간단한 지출기록과 하루 정리. 

그러다 애써 우선순위에서 제쳐두었던 내 블로그가 생각났다.



작년 8월 이후 포스팅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9월부터 일을 시작하였고, 늘 하던 일에 새로운 일들도 함께 하게 되었기에

한 학기 정도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 글들을 다시 천천히 봤다. (몇 개만).


사실 여행기를 강박적으로 쓰고 저장한 다음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그냥 기록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기록했던 것이었고,

더 잘 쓰고 싶었지만 잘 쓰지 못했기 때문에, 즉 내맘대로 마구 다 때려 넣었기 때문에, 

글의 스타일도 내가 늘 써오던 일기와는 달랐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다시금 그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그리고 곳곳에 묻어 있는 내 불안감과 편협한 사고들이 

'와~~나 저랬지~~헐헐~~저런 마음으로 어떻게 여행했음??' 이런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7개월간의 짧은 여행이었고(2년 계획에 비해)

여행 중에는 여행의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 한 1년 되는 이 시점에서 다시 돌아보니

나는 여행에서 얻은 것이 정말 많다. 


지난 1년간 여행의 의미를 수 십 번, 수 백 번 이야기 해왔다.

그런데 그 때도 잘 느끼지 못했다.  '이러이러한 점이 변했어' 정도로 기술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은...

여행 전 후의 나는 완전히 그대로고, 또 완전히 다르다.


사회환경의 맥락 내에서 내 이름을 가지고 내 신체를 가진 내게 주어진 조건들은 변함 없다.

여행 전의 게으르고 게으르고 게으른 습관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사회환경을 바라보고, 내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 삶을 바라보고 구성하는 가치관이 달라졌다. 

나를 옥죄고 있던 족쇄에서 마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나는 나와 내 주변의 환경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떠난다, 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결혼이 하고 싶어졌고,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고,

나와 남편의 가족들이 모두 우리와 함께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었다.

기꺼이, 사람이 태어나 밟아가는 너무도 보편적인 그 싸이클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경제적인 부담감에서 벗어 났고 (빈민수준이지만)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가족을 통해 치유받는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

영적인 의식에 좀 더 다가가게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 뭔가 할렐루야 아멘 외쳐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옴샨티, 나마스떼의 느낌이랄까.




아무튼, 좋다. 좋았다. 그리고 또 앞으로도 좋을 것이다.

주문에 좋은 힘이 들어간다. 


 

---


2017.11.24 03:25

.


굉장히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 버렸는데

나는 그냥 지금 여기에 있다.

내게 남은 것은 대체 얼마나 지나가버렸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과거의 시간도 대체 어떤 형태로 어떠한 감정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도 아닌 그저 단지 지금 여기 이 순간.



문득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도 있고

문득 미칠듯 궁금해질 때도 있고

문득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고


마음 한 켠에 드리워진 그림자 처럼

그냥 나랑 함께 살아가는 

그냥 그런 지나간 시간들


나는 나이지만

과거의 내가 아니고,

나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이 현재의 나 또한 

내가 아니다.



극심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서 겨우 기어나와 보니

남은 것은 

그리고 남길 것은

그리고 쥐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


극강의 허무함이면서도

단순한 허무함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허무함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아, 그냥, 이런 거구나, 


싶은 마음이랄까





복잡한 생각들

온갖 수사로 뒤덮인 문장들

감성의 조각들


그런 거 이제는 많이 없다



그냥 내게 남은 것은

지금 이 순간 뿐이라는 것

지금 웃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이 전부이면 그만이라는 것

그런.. 

바뀌어버린 신념이라고 해야할지 

체념이라고 해야할지

뭐 아무튼 그냥 그런 거.





그립고

불안하고

긴장이 되고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고

나를 정리해보고 싶고

알고 싶고

더 해나가고 싶고

힘을 내고 싶고

도전하고 싶고


하는 그런 것들이


있기는 있는데.


없어진 것이 아닌데



지금 이 순간 엉덩이와 허벅지를 감싸는 따뜻한 보일러의 온기 때문인지


썩 와닿지 않고

애써 가슴에서 꺼내어 손에 쥔 채 흔들어 대며 

나 이런 거 가지고 있노라 외치고 싶지도 않고


그러한 마음.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그거 또한 지나갈 것이고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채웠다 비웠다를 반복하며 

그냥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오랫동안 시달려온 망상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린 

만성 스키조 환자의 심정이라고 하면

조금 비슷할까?






세시 반이네.


어이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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