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상담2. 선택을 가로 막는 무거운 덩어리
졸립다.
어제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상담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상담 전까지 오늘 퇴근이 늦어질 것 같아 상담을 미뤄야 할 것 같다는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진로 상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저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사실 10만원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시간, 선생님께서 내주셨던 정보 탐색 숙제를 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무튼, 그러한 복잡한 심정으로 상담에 갔다.
마음의 변화가 있었느냐 물으셨다.
집에 가는 길에 조금 후련했다고 했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느냐 물으셨다.
..사실.. 내가 대체 왜 이리도 간단한 결정을 이다지도 복잡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고민하고 있는 걸까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반복해 보라고 하셨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한 번 더.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한 번 더.
제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요? 웃음.
말하면서 심경의 변화가 있냐 물으셨다.
아니오.
목소리 크기가 작아지고, 되물은 것을 알아차렸냐 물으셨다.
목소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질문의 의도를 몰라서 되물었다 했다.
김선생은 자신에게 참 엄하구나, 지금-여기가 참 힘들구나, 생각이 참 복잡해서 결정도 힘들겠구나, 그런 고민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 자신을 비난 하고 있구나, 하셨다.
그때부터였나. 내가 흔들린게. 네,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결정은 생의 전환기에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에 고민하고 깊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셨다.
나는, 깊이 들어가기 두렵고, 회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였나, 진로상담이 심리상담 모드로 전환된 것이.
시간이 지난 후 오늘의 결정을 돌아보며 실패한 결정으로 후회하게 될까봐 결정이 두렵다고 말했다.
실패에 대해 말해보라 하셨다.
서울에서 그리고 여기 대학원에서 꺾여야 했던 것을 떠올리고 말씀드렸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살짝 언급했다.
( 그러고보니 직접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 묻지 않으셨구나.
내가 다 이실직고 했다. 고수시군...)
다시 진로 이야기로 넘어갔던 것 같은데, 그 때부터는 뭔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있어서 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를 선택하면 장점이 뭐냐 하셨던가.
내 나와바리라고 말씀드렸다. 안정감.
나와바리는 너무 포괄적이라며, 파고드셨다.
나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무의식적 방어였던 것 같다.
내가 서울에서 있었던 심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숨을 깊고 길게 몰아 쉬는 것을 지적하셨다.
나는 몰랐다고 말했다. 계속 그렇게 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과의 물리적 거리감.
내가 부재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상황이 바뀌어도 그 두려움이 나를 괴롭히는 상태.
당시에는 내 공부도 가족도 어느 것 하나 지킬 수 없었기에 내가 패닉이었다고 말했다. 패닉이라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중간 어디에서 눈물이 났는데, 그 포인트는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그 때 다 접고 내려오는 것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 같냐고 물으셨다.
나는 망설임없이 이야기했다. 엄마가 죽었을 것 같고,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겨우 추스린 뒤, 동생이, 나와 같은 아픈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 말했다.
동생 언급을 할 때였나,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 닦고 있을 때,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 느껴졌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감정의 공명이 있어서 눈시울이 당신도 붉어졌노라 말씀하셨다.
자연스럽게, 4학년 때의 경험과, 부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스스로를 위로하라 하셨다. 당시 스물 넷의 여대생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하셨다. 그 때의 나에게 무슨 말 해주고 싶냐 하셨다.
대견하고 잘 견뎠다, 고생했다, 라고 말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라는 말은 삼켰다. 그 말을 꺼내면 가정의 북받침이 또 한 차례 올라올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결정을 할 때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겠다고 하셨다.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나도, 생각이 조금 선명해졌다. 선택지가 줄어든 느낌이다.
+ 미러, 푸시가 필요하다 했다.
혼자서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과 소속 하에 공부하는 것을 비교했다.
혼자서도 하고 연구도 내가 아는 걸 확인하고 싶지만
혼자서나 소속이 아닌 스터디로는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집에 가면서 알아차렸다.
서울은 패닉이었고,
더 심각했던 것은 대학원 때였다.
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