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간/생각의 구름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feat. 가족)

담연. 2023. 2. 14. 18:05
 
2022. 3. 6. 21:32
 
 
최근 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새삼 나이를 먹어 간가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지인에게 참으로 흥미롭고 뿌듯한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인은 평생 두 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넘어져 다칠까봐 무서웠대요. 어느 날 지인의 자녀가 자전거를 탈 때 지인도 도전하였다고 합니다. 여태 무서웠던 그 마음을 꾹 참고 '용기'를 내었더니 금방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요.

뿌듯해하는 지인만큼 제 마음도 정말 뭉클했습니다. 평생 무서워서 시도해보지 못했었는데 어느 새 용기를 낼 마음의 힘이 생겼고, 또 자녀덕에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지인이 참으로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 그런 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아니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적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처음 '아,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 를 느낀 것은 바로 고기를 싼 쌈의 크기가 점점 커져감을 느꼈던 때랍니다. 어릴 적에는 먹는 양도 적고 입을 크게 벌리고 쌈을 집어 넣는 게 내키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당연하게 쌈을 싸먹고, 채소를 두 장씩 겹쳐 먹고, 주먹만한 쌈을 싸서 누가 보든 말든 입에 우겨 넣고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서 혼자 괜히 대견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 내가 설정해 두었던 틀로부터 점차 자유로워 진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특히 가까운 가족과 함께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의 쌈도 수많은 술친구들 덕분이고, 지인의 두 발 자전거도 자녀 덕분이었으니까요.

 

최근 제게도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얼마전 저희 모친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자택 격리를 시작하였습니다. 격리된 날 이틀 후는 모친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날 격리라니.. 안타까움이 들었어요. 모친이 코로나 감염 첫 날과 이튿 날 열감, 근육통 등으로 크게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생일상 겸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네다섯 시간에 걸쳐 미역국, 삼계탕, 당근스프, 몇 가지의 나물 요리를 했지요. 생전 처음 양지육수를 내어 미역국을 끓이고, 생고기는 징그러워 손대지 않던 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맨손으로 닭을 씻고 기름을 떼어내고 삼계탕을 끓인 후 모친이 늘 해주시던대로 살을 발라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머릿 속에는 미역국, 찰밥, 커다란 생선, 소불고기, 나물 몇 가지 등등이 올려진 수 십 개의 지난 제 생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모친은 제게 수 십 번의 생일 상을 차려 주었는데, 전 생전 처음으로 모친에게 (제대로 된) 미역국을 끓여드린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모친은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6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특히 모친의 어머니(외할머니)께서 상당히 일찍 돌아가셔서 언니들의 손에 자랐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모친에게는 누가 미역국을 끓여 주었을까? 몇 살까지 생일상을 받아 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제서야 들었습니다. 제 생일 미역국도, 동생의 미역국도, 부친의 미역국도, 모친 자신의 미역국도 매번 모친이 끓이는 것이 너무 당연했었는데...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불효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모친도 저도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늦었지만 제가 모친의 생일상을 차려드리는 때가 되었네요. 모친도 이제는 자녀에게 생일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네요.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전복되는 순간 새로운 관계가 출현하고 가족의 우애는 조금 더 깊어지는 것이 느껴져 한동안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나의 젊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우신가요? 피부에 늘어가는 잔주름, 희끗희끗 해지는 머리칼, 계단 몇 개를 올라도 금방 숨이 차오르는 저질체력, 기억력이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느낌 등. 나이를 먹어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대표적인 것들이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가능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저처럼 마음이 뭉클해지고 뿌듯해지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시나요?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현명하고, 조금 더 성숙된 사람으로 나아가는 그 여정을 모두가 만끽하며 지내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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