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컵] 레나컵(Lena Cup) 첫 사용기
이미 많은 후기들이 올라와 있지만 나에게는 생 전 첫 경험이기도 하고, 누군가 매우 자세히 써 준 글을 보면서 상당히 도움을 받았기에, 내 글 역시 그 어느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한 후기를 쓰기로 했다.
생리컵 구매 계기:
장기 여행을 앞두고 환경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생리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면 생리대를 생각해봤다. 숙소를 매번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척의 문제가 있었지만, 어차피 생리 양이 많을 때에는 한 숙소에서 쉴 예정이고, 이동을 하더라도 씻어놓고 밤새 말리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내 생각처럼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 그러다 우연히 생리컵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고, 이거다! 싶었다.
경험:
나는 탐폰, 출산 경험이 없다. virgin은 아니다.
컵 종류 결정과 구매:
블로그, 게시글 등을 검색해 보았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고 후기로 남겨진 것들은 레나컵(Lena cup)과 릴리컵(Lily cup)이었다. 대충의 조사로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아마존에 게시된 후기 글 수만 보면 레나컵 보다는 디바컵(Diva cup)이 압도적으로 많다. 디바컵은 겉으로 보기에 조금 더 얇게 생겼고 무색인데, 변색된다는 후기를 읽었다. 그리고 릴리컵은 경도가 좀 약하고 모양이 특이해서, 일단 처음 쓰는 걸로 무난하게 생기고 평도 좋은 레나컵으로 빠르게 결정.
아마존에서 구입하면 배대지를 이용해야 하는데 복잡하게 이것 저것 하려니 귀찮아서, 영국회사인 Precious Stars(www.preciousstars.net)에서 구입했다. 1주일 걸리는 배송은 10파운드, 2주 정도 걸리는 배송은 그 반값인데, 곧 생리를 할 것 같아서 빠른 배송으로 선택. 주문은 8/16, 배송완료는 8/22이어 1주일가량 걸렸고, 생리가 시작된 3일차에 받았다.
나는 보통 생리 하루 이틀 사이에 양이 아주 많은 편이고 그런 날 밤새 넉넉하게 받아지길 원해서 small 과 large 모두 구매. 총 7만원 정도 들었다. 최근 1파운드=1유로의 기세를 보이고 있는지라 예상보다 비싸게 들었다. 브렉시트 터지고 바로 샀더라면 더 싸게 구입했겠지 하는 다소의 씁쓸함이 들었지만 배대지 이용하는 거랑 큰 차이 없으니 그냥 만족하기로(...).
--- 요약: 레나컵 스몰 & 라지 사이즈 2개. 약 7만원 지출. 배송 1주일 소요. ---
외관:
라지(분홍색)는 사진을 미처 찍지 않았다. 두개 세트로 된 게 없어서 낱개로 구매했는데 녹색은 스몰사이즈로 뭔가랑 콜라보레이션되어진 거라고 한다.
사용기:
첫 날 첫 장착.
시작.
우선 동봉된 안내문을 유심히 보았다. 쉽고 자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어서 꼭 정독하길 권한다. 레나컵 사용에 관한 모든 게 다 있다. 다른 생각 고민 없이 그대로 따르면 될 것 같았다.
우선 끓는 물에 대충 삶았다. 그리고 찬물에 식히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 변기에 걸터 앉는 것보다, 욕조에 한 쪽 다리를 올리고, 스쿼트를 하듯 무릎을 궆인 상태가 가장 편했다. 3가지 접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펴질 때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7-fold로 시도했다. 펀치다운(funch-down)이나 씨-폴드(C-fold)는 왠지 탁! 하고 펴져서 질벽을 때릴 것 같이 느껴졌기에(그렇게 따지면 세븐폴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왠지 그냥 느낌적인 느낌상..).
심호흡을 하고, 질 입구에 살짝 갖다 댄 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도록, 그리고 컵이 뒤로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아주 약간 힘을 준 상태로 받친 채 약간씩 밀며 기다렸다.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게 맞나 의심이 되고 자꾸 빼서 다시 해보고 싶고 뭔가 안되는 것 같고 무튼 그런 이상한 시간을 꾹 견디고, 손을 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의 우려와는 달리 첫 시도에서 바로 성공해버렸다. 택배를 받고 설명서를 읽고 시도해보기 전까지 머리 속으로 자궁과 질의 위치, 레나컵이 있어야 할 자리, 넣는 과정 시뮬레이션을 무수히 많이 한 탓인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좁은 관 속에 관의 넓이보다 더 벌어진 탄탄한 집게(?) 같은 걸 넣어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질벽과 컵의 넓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 둘이 부딪힌 텐션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이물감이 계속 느껴지고 어색해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집안을 배회했다. 라이너를 붙인 팬티를 입었는데 꼭지 부분(stem)이 좀 길게 튀어 나왔지만 살짝 옆으로 눕혀서 자리에 앉아 보았더니 나쁘지 않았다. 꼭지는 한 칸 정도 자르는 게 나에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확인해보니, 꼭지 부분이 대음순 사이로 쏙 들어가서 걸리적 거리는 게 없어졌다. 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라이너에 묻어 나오는 것도 없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 배 속에서 공기가 뭔가 자궁을 압박하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든다. 이건 좀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 괜히 이상하고,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뻐근하고, 불편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편하지도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
두시간 반이 지난 후.
라이너에 짙은 혈이 묻어 났다. 드디어 빼 보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장실에서 한 쪽 다리를 들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히고 무릎도 굽힌 자세에서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케겔운동을 할 때는 힘을 몸 안으로 빨아 당기듯 준다면 컵을 뺄 때에는 힘을 밖으로 주어 질쪽 부위를 탄탄하게 만들어 준 상태에서 시작했다. 손으로 컵의 아랫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 (ㅜㅜ하... 손을 몸 안에 넣는 건 처음이었는데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는 어색함이 컸지만 필수 과정이므로 참게 됨) 질벽과 컵 사이로 들어간 손가락에 힘을 주어 컵 모양을 찌그러트린 뒤에 조금씩 빼냈다. 그런데 좀 순식간에 빠진 탓인지, 컵의 내용물을 순간적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컵이 손에서 미끄러져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내용물이 바닥에 철푸덕. 등에서 식은 땀이 주룩 났다. 만약 공공장소였다면? 후덜덜...... 진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무튼, 라이너에 혈흔이 묻어났던 이유는 바닥에 철푸덕한 덩어리 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보다 많은 양이어서 놀랬다.
세척을 하고, 다시 심호흡을 하고 삽입 시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맨 처음 때 보다는 힘들었다. 그 때는 멋모르고 성공했던 거라면, 다시 넣을 때에는... 하아. 역시 7-fold로 했는데 첫 시도 때 약간 구긴 상태에서 밀어 넣었다 보니(ㅠㅠ표현이 과격한 느낌이) 아랫부분이 다 펴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빼고 다시 넣기를 시도.
이 때 나름 요령을 터득했는데.. 접은 상태에서 질 속으로 완전히 넣은 다음 컵이 펴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질 입구에 컵의 머릿 부분이 대충 다 들어갔다 싶으면 컵의 1/2정도 더 넣은 다음, 컵이 완전히 펴진 상태에서 조금씩 넣어 보았다. 그리고 대음순 사이로 컵의 맨 아래 부분(Body grip rings)이 만져질 정도에서 멈추었다. 그러고 나면 속에서 컵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꼭지 부분도 쏙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았다.
다시 네 시간이 지난 후.
바쁘게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다가 샤워할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비워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빼는 건 확실히 쉬운 것 같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세를 잡고, 힘을 주어서 아랫부분이 단단해 지도록 했다. 꼭지(stem)를 살짝 잡고 컵의 아래 부분(Body grip rings)을 더듬어 손가락을 살짝 끼운 다음 컵을 부드럽게 빼냈다. 컵의 겉 면과 손가락에 아무런 혈이 묻어나지 않았고, 컵 1/3가량 정도의 혈이 곱게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살펴봤다. 생리 인생 20년동안 내가 만났던 생리혈이란 생리대에 쫙 퍼져서 냄새나는 더러운 것이었는데 컵에 곱게 담긴 혈은 냄새도 나지 않았고 더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신기한 느낌이 들었고, 생리와 더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또르르 비워내니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생리 4일차라 그런지.
그리고 샤워하다가 불현듯 생리컵 이거 정말 대단한 물건이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씻을 때 생리를 하지 않는 날과 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 그 때부터 감탄감탄 또 감탄. 생리기간이 이렇게 깨끗하고 상쾌할 수가 있다니! 혁명이다. 혁명.
다시 넣을 때, 한 번만에 부드럽게 넣어지긴 하지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 든다. 맨 처음엔 멋모르고 했다면 계속 할 때마다 요령을 생각하다 보니 뜻대로 잘 안되나보다. 어쨌든 컵을 장착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맨 처음에 혈흔이 라이너에 묻어 나왔던 것 이후로 묻어나지 않는 걸 보니 나름대로 장착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야간에 사용.
약 네시간 후에 다시 교체를 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 대망의 잠자는 시간. 두둥.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화장실가서 확인햇는데 '에게?' 싶을 정도의 양이 담겨 있었다. 음, 생리 끝물이라 그런지 양이 많지 않네. 싶었다. 그래도 생리대를 쓴다면 작은거 두개든 오버나이트든 썼을 테고 아주 미량의 양이 묻어 나와도 그건 버렸겠지.
생리컵은 혁명이다 진짜.
위생적으로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건강적으로(생리통 등) 어디 하나 빠질 게 없다.
너무 좋다.
이튿날.
여전히 몸 속에 무언가를 우겨 넣고 빼는 것은 역겨움까지는 아니지만 다소의 불쾌감?이 느껴진다.
아침에 잠깐 생리대를 했는데 꽤 묻어 나왔길래 다시 생리컵을 착용하고서 한 8시간 정도 받아냈다. 놀라운 것은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1/3 컵정도. 이 정도면 생리대가 완전히 젖지 않아도 그 특유의 역겨운 냄새 때문에 못해도 2-3개는 교체했을텐데.
여지껏 얼마나 많은 생리대를 낭비하면서 환경오염에 일조했었는가를 생각하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약간의 단점과 우려점을 두서 없이 들어 보자면,
약간의 불편함
-공중화장실에서의 작업은 과연 어떨지,. 물티슈를 지참한다고 해도 위생적으로 완벽하지 못할테니.
-엄마랑 있을 때 뭔가 자연스럽게 숨기게 되는 것.
-아직 넣고 빼는 게 썩 기분좋지 않고 요령을 익히기 전까지 아파서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좀 하게 됨.
컵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
-컵이 질 벽을 자극시켜 질벽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물론 질벽 근육이 그리 얕볼 만한 게 아니지만 장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질벽의 탄성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지 않...나? ㅋ)
-누워서 뒹굴거릴 때 컵에 담긴 혈이 역류되지는 않을까
-실리콘 재질이다 보니 질 속에서 공기가 자연스럽게 배출되지 않아서 그게 자궁을 압박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다음에 컵 사용지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길 위에서다. 과연 어찌 될지..... 기대가 된다. 내 평생 생리를 기다리는 심정이 될 줄이야. 다른 블로거들도 생리를 기다리게 된다더니 딱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