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 곳] 5. 연민, 변명

담연. 2017. 2. 28. 21:10

12월 말. 

이모에게 생전 처음으로 편지를 쓰다가 눈물이 터졌다. 해맑게 곳의 행복한 시간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너무도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과, 뿌리 깊은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당시 내가 있었던 한도 내에서 내가 있는 심리적인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만하면 됐는데, 뭐가 이다지도, 아니 아직까지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기분이 좋지 않다


대단한 공부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대체 무엇에 그렇게 쫓기듯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버린 돌덩이 마냥 세상의 온갖 힘겨움을 짊어 안은 것처럼 살았을까


서러움의 눈물 속에는 시간을 과연 이모가, 가족들이, 이해를 할까 하는 서운함이 가득하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왠지 온갖 잘못을 혼자서 저지른 아이마냥 무섭고 공포스럽다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이 나는 힘이 들었으니까, 조금 쉬도록 하겠다, 라고 가볍게 말하면 되는데. 그냥, 때에는 마음 하나 돌보기 힘들어 차마 마주할 자신이 없었노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너는 잘못한 것이 없고 지금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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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서 괜시리 생전 하지 않던 카드 만들기가 하고싶어 졌었다. 카드를 보내고 싶은 이들의 숫자가 매우 많았는데, 막상 재료를 사고 하나 둘 카드를 만들고 편지를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졌고 자연스레 명단도 줄어들었다. 정말 쓰고 싶은 이에게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 다했다(사실 카드를 만들고 꾸미는 것에 너무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면 나는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대부분 못하기 때문). 


나는 그들에게, 그러니까 내가 이 행복하고 여유롭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한 이 시간들을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자랑을 하여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것 같은 그들에게, 장문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신기하게도 모든 이에게 다 다른 내용의 글을 썼다. 수다가 고팠나 보다. 내가 있던 곳에 내 주변에 항상 있던 그들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왕래가 거의 없었던 친척 어른 두 분에게 카드를 썼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항상 한결 같던 분들이다. 아직도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고는 흐뭇해하는 분들이다. 그들에게 내가 왜 이렇게 훌쩍 떠나야 했는지 어느 정도 설명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다, 굉장히, 복받치는 감정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들이 올라왔다. 나에 대한 연민, 그들에 대한 미안함, 죄의식, 억울함,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던 것 같다.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나는 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종종 느껴왔다. 'where am i, who am i,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why am i like this???' 'I deserve it, it's 'the' time necessary for my life' 의 충돌로 인한 그 기분 나쁜 감정들 말이다. 양미니가 내게 언젠가 쌩뚱맞게 던졌던, '친구여, 자기개념통합을 이루고 오라' 던 그 말 뜻을 알 것 같다. 결론 없이 마무리 없이 글 쓰기를 여기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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