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떠나려는 이유

담연. 2016. 3. 24. 09:28

그 동안 내 머릿 속에서, 내 입에서, 써내려간 글에서, 떠나는 이유에 대해 굉장히 많은 항변을 늘어 놓았다.

얼마전 오랜 친구는 나의 허세가득한 설명을 듣고서 마치 감탄사처럼 "고리타분하다!!" 라고 외쳤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사랑, 충만함, 새로움, 만남 등으로 가득찬 몽환적이고(내 기준에서) 아름다운 경험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새로운 현실에 나를 밀어 넣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 새로운 도전거리에 대한 견딤, 현실로부터의 도피, 또 다른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쓰다보니 또 항변을 늘어 놓고 있다.

집중하자. 내 마음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세상을 향한 나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늘 일상에 좇기고 뭔가를 더 해야만 하고 잘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불안하고 아무리 잘해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내면에 공포가 가득한 것이다. 비난, 실패, 실수, 뒤처짐, 부족함, 소외에 대한 공포. 그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난 어느 누구만큼이나 잘 하고 있다. 하지만 내 좁은 이 마음 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공포감이 내 육신과 정신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부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 공포감정이라는 녀석이 내 인생 전부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 공포 때문에,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걱정을 하다 보니 온전하게 즐거운 마음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공포감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공포를 느끼는 이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면서 점차적으로 적응하고 공포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치 치과공포가 강했으나 나이가 든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진료를 잘 받고 오는 것, 예쁘게 차려 입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이 컸으나 이제는 대충 입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다니는 것, social anxiety가 높다 보니 작은 일에도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그렇지 않게 된 것과 같이... 내 상태에 적응하고 조금씩 변화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내가 지금 속한 이 사회와 현실에서 완전히 다른 환경에 나를 보내어 보는 것이다. 장기여행이 그런 것이다. 완전 새로운 패러다임과 시스템에 나를 보내고 그 곳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내가 가진 케케묵은 가치관과 공포심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비합리성에 대해 직면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경쟁과 빨리빨리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생활에 놓여 보는 것. 다분히 나만의 억지 논리일 수 있으나, 일종의 자극홍수라고나 할까?


두 번째 방법은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크고 여행 후 다시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 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였다. 왤까. 


공포라는 녀석과 내가 가진 알량한 자부심을 놓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떨어져 볼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려보겠다는 욕심. 두둥.


그래, 나랑 그만 싸우자 이제. 

단순하게 생각하자.

떠오르는 불안들은 그러려니 내버려두고 물끄럼히 바라보자.


나는 갈 것이고, 상당히 기대가 되며, 생각만 해도 설레고 좋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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