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일탈을 망설이는 이라면 누구나

담연. 2016. 2. 18. 15:53

saramm 2016.01.06 15:24

일탈, 특히 잘 굴러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뜬금없이 장기적인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혹은 마음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적인 고민은 불가피할 것이다. 나와 J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의 불안감과 걱정거리는 J보다 강도가 세었다. 몇 날 며칠을 갈팡질팡,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였다. 그러다 결국 J에게 '도라이가' 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했다.

 

현실적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경비와 직장. '영혼까지 끌어 모아야 경비가 마련이 되고, 여행 후에는 0 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떠난 사이 원하는(혹은 더 나은 조건의) 자리가 나왔을 때 갈 수 없다'. '그 동안 일적으로 쌓아온 내공을 잃을 수 있다'.

 

심지어 더욱더 큰 불안의 원인은 또 따로 있었다. '나' 라는 사람의 성향과 욕구와 관련된 문제였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일을 하면서 스스로 유능감을 느끼고, 인정을 받으며, 나를 찾아온 혹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때' '전공 관련 서적을 읽을 때' 였다. 그러나 여행을 가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어서 논문을 쓰고 게재를 하여야 하는데...어쩌지... 하는 불안도 컸다(고 쓰지만, 여전히 '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건가?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왜 그것에만 목을 매달려고 하는 것인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면 쉬울 것을.  ㅡ2016.5.18)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쉽게 반박하고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법한 사소한 걱정들이지만, 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는 마치 세상 모든 걱정거리를 다 떠안은 느낌이었고, 나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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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월 2일), 저 고민들은 정말 이 넓은 우주 속에서 so trivial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직장은 다시 구하면 되고, 경비에 맞춰 여행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여행 겸 경비 조달 목적으로 워킹(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인.. 뒤늦게서야.. 굳~이 안정적인 직장과 직업을 버리고 타국에 가서 험한 노동을 해야 하는...!)을 고려 중이다. 최소 6개월 정도. 여행 기간은 자연스럽게 더 늘어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가 돌아와야 할 곳으로부터 더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

 

대체 뒤늦게 드디어 인생에서 안정적인 시기를 찾았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가도 것도 좋은 경험이지 라는 생각이 들고, 경비에 맞춰 짧게 여행 하고 오면 안되나 싶다가도 그럼 너무 아쉬운데 싶고, 이 돈이면 향후 몇 년간 풍족한 여행을 단기로 잘 다녀올 수 있을텐데 싶다가도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라는 생각이 들고, 생각이 무한 반복된다.

 

하지만 이 고민이, 한 달 전만큼 나를 짓누르고 숨통을 조여오지는 않는다. 일단 떠난 뒤 생각해봐야지 싶다. J에게도 충분히 말을 해주었다. 돈 떨어지고 워킹 자신 없으면 난 돌아가겠노라고.

 

 

 

아... 떠난 뒤 다시 보면 '그땐 그랬지, 그 뭣이라고' 라며 미소 지을 수 있을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과 관련된 고민은 중요하다.  타인의 눈에는 매우 편협하고 사소하며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순간 경험하는 개인의 고민이란 가치없고 쓸데 없으며 비생산적이거나 소모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믿고 싶다). 사소한 고민이라도 현실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대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고민으로 인한 불안과 얽매임, 구속의 정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라며 나의 고민을 변호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여행이 혹 현실 도피로 떠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는 내 말에, 오랜 선배가 망설임 없이 명쾌하게 "그것도 경험이지" 라고 말을 해주었을 때, 게임 끝났다. 새삼, 주변에 나와 같은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고, 존경해 마지않는 그들이 작은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기까지 한다는 걸 느끼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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