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발리] 두 달간의 조촐한 수기 ㅡ 우붓. 불안, 관계에 대한 단상들

담연. 2017. 4. 30. 14:55

2/19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자기위안

정말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순간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이 있다. 침습적 사고 혹은 침습적 이미지라고도 하는 그 것. 어떨 때에는 그것이 내가 과거에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를 했거나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꼈던 장면이기도 하고, 머지 않은 미래에 나는 이러한 일들을 경험할 거야하는 상상의(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실들에 기반한 추론적인) 장면들이기도 하다. 

 

과거의 장면들이 지나갈 때에는 한심했던 모습에 속이 쓰라리기는 하여도 '그래, 이런 식으로 다시 떠올린 깨끗하게 정화가 되는 거야' 라며 나름대로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미래의 장면들이 상상될 때에는 야릇한 불안감을 느낄 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문득문득 상상하는 불안하고 기분 나쁜 미래란,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했던 것과 유사하다. 가령,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차지할)직업적이고 학업적인 측면에서 남들에 비해 참이나 뒤처져서 후발주자로 부리나케 쫓아가려 하지만 결국 너무 힘겨워 지는 장면, 돈도 없으니 부족한 겉모습으로 보여져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장면들, 그런 것들이다. 

 

지레짐작에 의해 ' 미래는 이렇게 암담할 것이다' 라고 상상하는 장면들이 지금처럼 마음에서 흘러갈 때면,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후회와 다소의 자책감이 든다. 갑자기 모든 여행의 시간들이 의미가 없어지고, 내가 떠나왔던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주변 이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결국 현재의 시간들이 미래에 중요한 순간에 방해요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가 불안감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현재 정도로 쓸모 없는, 낭비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일부가 맞는 이유는, 짧은 호흡으로 나는 현재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많고, 여행인지 백수의 삶인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가 틀린 이유는, 사실 여행과 시간에 부여하는 개인적인 의미와 바람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나는 시간들을 통해, 현재에 충실하고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즐길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있게 것이다' 혹은 '삶의 패러다임, 삶에서의 우선순위를 바꿀 있거나 적어도 다른 삶의 방식을 잠깐이나마 경험할 있는 값진 시간이 것이다' 라는 정도가 되겠다. 중요한 사실은, 시간들이 나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는 확신이 든다는 점이다.


삶에서 내가 맞닥뜨리는 모든 일들은 그 시기에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는 믿음이 있다.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 마음을 좀 더 믿고 좀 더 소중히 다루어야겠다.




2/21 타인에게 갖는 기대감의 폐해

사실, 22 수요일 새벽이다.

주말 이후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지 않고 있다. 

.


주말과 오늘까지의 일상을 나열해 본다면,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와서 찌개를 끓이거나 볶음밥을 해먹거나 미니오븐에 식빵피자를 만들어 먹거나, 간식을 먹는 일이 주된 일이다. 우리의 엥겔지수는 0.9 육박할 같다.


균은 폰으로 리니지 게임을 하고, 내가 함께 절대 보지 않는 몇몇의 예능과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를 들여다 보고, 담배를 피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나의 잔소리와 괴롭힘에 원형탈모도 생겼다. 혼자서 맨몸 운동을 가지 침대에서 쭈우우우욱 누워 뒹굴거리다가 잠이 든다. 


나는 그런 균에게 잔소리를 하고 틱틱거리고 괴롭힌다. 여행이 재미가 없고 너에게 실망을 했고 집에 가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회화 공부를 하고, 뉴스공장을 듣고, 뉴스룸을 보고, 며칠 미드 영드 두 시리즈를 몰아서 보고, 다음주 주말쯤에 오는 가족들을 위한 여행계획을 세운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식탁위를 정리하고, 손빨래를 하고, 커피를 타고, 가끔 설거지를 하고, 가끔 요리를 한다. 


우리는 함께 장을 봐오고, 피고인을 보고, 냉부를 보고, 밥을 먹고, 가끔 의논을 한다.

 


 

가까운 타인에게 가지는 기대감은 언젠가 관계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있다. 기대감은 타인에 대한 가벼운 통제를 야기할 있다. 만약 타인에 대한 (반복된) 실망감이 쌓인다면, 이는 쓸데 없는 원망감으로 변질될 있고, 결국은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분노하게 하면서 개인의 삶을 갉아 먹을 있다.

 

이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는 약간의 다른 문제인 같다. 인정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타인의 일부를 존중할 있느냐, 혹은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미칠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가까울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어느 성인들 처럼 모든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도를 닦거나 해탈에  도달하여 속세에서 어떤 자극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무던하게 살아가는 것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좋은 식으로 유지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상대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것이 자꾸 삶의 영역에 침범하여 들어올 경우정말 진심으로 실망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을 있을까. 설령 실망, 분노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결국 관계는 끝이나게 것이라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끝이건, 심리적인 끝이건, 끝은 끝이니까. 

 

관계의 본질은 존재 자체라면 정말 이상적이겠으나, 결국 속된 말로 '기브 테이크' 밑바탕에 깔려 있다. '감정' 이건 '물질' 이건 간에 사이에 원하는 것들이 오고가지 않고 소통되지 않으면 관계에는 미래가 없다. 그럼 기대감을 갖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기대감이 없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데 기대감을 가지지 않을 수도 없다는 그런 스크류바처럼 꼬이고 꼬인 이상한 생각은 이제 그만.

 

 

 

두시가 다되어 가는데... 아아아. 다음 주에는 커플도 오고 엄마와 동생도 오니까 바쁠테니까 지금의 여유를 즐기자. 설레고 기대된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좋다. 호주 걱정도 안된다. 아하하하 닐리리야 닐리리야 닐리리



2/25 

1.

공기 중으로 흩어진 수만 수천의 말들.

우리에게 이보다 나은 치료는 없노라, 꺼내고 나누고 삼키며 눈물짓고 웃음 짓던 때의 말들.

, 어디로 떠났을까.

 

순간 괴로웠던 순간 위로가 필요했던 순간 우리를 지탱해주고 연결해주고 위로해주는 기능만으로도 충분한 것이겠지. ?...

 

 

 

2.

수행을 위해 출가를 한다는 사실 자체는

결국 속세에서는, 타인과 '' 로서 얽히고 섥혀야만 하는 속세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고통을 피할 있거나 적어도 '' 라는 것을 고쳐 다시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생각.

 

 

 

3.

보여주는 여행이 아닌 나를 위한 여행, 나를 위한 시간이 되라던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여행의 모토 혹은 학급 칠판에 적힌 교훈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좋다. 마음을 잡아가는 길이 되고 있다. 

 

 

 

4.

나에게서 부족한 것을 자꾸 상대로부터 채우려고 하는, 못된 고질적인 .

쉽게 말하자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라고? 

에라이, 엿이나 먹으라 그래, 라고 말함과 동시에 나는 수행과 사랑과 평화를 습득하기에는 멀고도 인간이군, 이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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