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가는 여정/임신

3개월 만의 진료, 시험관 시술 결정(feat.수많은 엄마들을 생각하며)

담연. 2023. 3. 2. 14:34

월경이 시작되었다. 주저 없이 난임 병원에 전화를 하고, 다음 날 진료 예약을 잡았다. 

내 마지막 진료는 3개월 전이다. 그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시험관 시술을 하겠다고 했고, 난임진단서를 받았고, 다음 진료 때는 보건소에서 시술비 지원 통지서를 받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순간적으로 엄습해온 공포심으로 3개월 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무서웠다. 생명을 인공적으로, 인위적으로 다룬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스른 채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몸과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면서 내 욕심으로 새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죄책감이 두려웠다. 남편과 나 모두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시간을 더 가져보고 싶기도 했다. 

만약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었다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라며 대충 숟가락 얹을 것 같은데, 이런 저런 과정을 겪어야 되다 보니 온갖 생각이 고개를 치켜든다. 남편은 아이를 원한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2세와 만나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한다. 나는? 아이를 왜 원하나? 아직 내 속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문들이 산재해 있다. 

이 시술 과정이 과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는 데까지는 인정이 되었지만, 나의 어떠한 욕심(혹은 욕구) 때문에 시술을 받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외면한 채 이번 진료 날, 나는 의사 선생님께 시험관 시술을 원한다고 덤덤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보통 한 달 정도 건강한 몸을 만들고 하는데 초음파를 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초음파 후 오늘부터 과배란유도주사를 맞으라 하신다. 내 몸이 괜찮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칠 겨를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네, 했다. 

돌이켜 보면,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질문거리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키는대로 하면 되겠지, 많은 생각은 말자, 싶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원무과에서 수납을 하며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갑작스럽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떠올랐다. 

며칠 전 통화에서 엄마는 내게 뜬금없이 오래 전 내 동생을 낳던 날 자신의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의 손길을 모른 채 자랐다. 외할머니는 막내딸인 우리 엄마를 낳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 

나는 왜 엄마가 떠올랐을까. 지금 타자를 치는 순간에도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사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일련의 과정을 보내면서 생명이 결실을 맺고 세상에 태어나 혼자의 힘으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양육자의 정성과 가슴앓이가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나를 낳고 또 동생을 낳는 동안 엄마가 느꼈을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오롯이 감내해 내어야 하는 역할. 경험도 없이, 가이드도 없이, 도와주는 이 없이(남편은 썩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혼자 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담감. 

수많은 엄마들이 생각이 났다. 소름이 돋았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임신을 하고 생명을 탄생시키고 자립 때까지 보살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과정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시술 과정에 대한 불안과 엄마의 감정에 대한 동일시와 수많은 엄마들의 노고에 대한 존경심이 이 눈물로 흘러 나오나 보다. 그리고 내 욕심에 한 생명을 받아들이는데 과연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내재되어 있나 보다. 

다시 내게 묻고 싶다. 나는 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가? 

희망이 새 생명을 만든다는데, 나는 희망이 있는가?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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