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호주] 5. 멜번과의 짧은 만남 후 급한 귀국

담연. 2017. 5. 5. 23:02

4/8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정기를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멜번으로 넘어왔다

호주에서 처음 보는 교통체증에 가장 놀랬고,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이 솟아 있는 수많은 빌딩들

땅이며 지상이며 바삐 움직이는 차들과 지하철과 트램들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위를 건너는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 휘황찬란한 간판에 복잡한 골목들까지


Big City! 

번도 도시에서의 삶이나 빌딩의 직장 등에 대해 로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내가 물에서 놀지 못했던가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너무 늦었겠지,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물론 곳에서도 나름대로의 삶의 고충이 있겠으나

환경 자체만으로 놓고 보았을 정말 하늘과 차이라고나 할까

도심 곳곳에 있는 푸른 잔디밭의 넓은 공원들, 아무 곳에서나 눕거나 앉아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속에서 묻어나는 여유

괜히 촌스러운 생각에 나 그동안 너무 시골에서만 놀았구나 싶었다…. 

 

 

울룰루에 다녀오고 이후로 부쩍 나무 생각이 자주 난다. 

당장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쏟아내고 싶다.

 

선생님, 저는 지금 제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어요

나를 공격하고 비난만 사람들로 가득 있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조촐하게라도 단정히 꾸려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배려하고 관심을 보이며 베풀 아는 사람들, 언제라도 손을 내밀어 있는 사람들

내가 관심을 보이면 그에 응답해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물론 조차도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전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보다는 훨씬 수월한 삶을 있을 같아요

누군가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일수도 있을텐데

저는 이렇게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사서 고생을 해야 겨우 얻을 있는 것인지 

대상 모를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저 업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준과 경험으로 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저의 경험으로 저의 삶을 사는 것이니까요

그렇겠지요 선생님 

 

 

다른 세계가 함께 하는 여행.

각자의 선호도나 취향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내세우다 보면 상대의 것이 종종 희생되고는 한다

기쁜 마음으로 상대의 것에 맞춰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와 맞지 않아' 라는 들키고 싶지 않은 본심이 

비언어적인 제스쳐로 드러나게 되어 결국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가 일쑤다.

맞추면 되는 정도가 있고, 아예 따로 움직이는 나은 정도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는 후자이지 싶다. 

 

 

멜번의 매력.

복잡한 도시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갈길을 고수한 채 도도하게 지나가는 트램들, 

곳곳에 산재한 멋진 건물들,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구역들, 

골목 골목 자리잡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 소리들. 




4/11 

멜번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탑승하기 시간 .

갑작스럽게 한국에 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비행기를 타기 12시간 전에 표를 끊었었다

하지만 나의 실수로 결국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멜번 공항에서 24시간 넘게 노숙을 해야 했다.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정확하게는 내가 했던 실수들에 대한 분노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였다

결과 나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 혼자 평온하게 글을 읽기만 하며 방관하던 균에, 

그리고 나에게 티케팅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사이트의 익명의 직원에 대한 

온갖 분노와 짜증과 원망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러다 화가 사그라들면서 다시 나의 실수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와 견딜 없는 마음들로 

괴로웠다. 

나는 항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완벽하게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러한 내가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만다는 자괴감.

 

꿈만 같던 시간들이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내가 가능한 순간까지 담그기를 미루어 왔던 현실을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었다. 

한국에 가서 일을 해결하고 투표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만

확신할 없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다

사실 다시 길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여행에 대한 약간의 수치심이 남게 것이다

사실조차 괴롭다.

 

그러한 상태에서 차가운 공항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펼치고 엎드린 상태에서 

바닥과 몸을 최대한 닿게 하기 위하여 밑에 손을 쪽잠을 잤다

정말 노숙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가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들이 

마치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만의 매트 공간 안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밝아오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져 짐을 꾸리고 의자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 왔던 책을 읽었다

어느 책에서나 한결같이 말하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는, 

구구절절하면서도 너무도 당연한 내용이 나를 위로하면서도 질책하는 기분이었다

알지만, 너무도 알지만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반응을 수정하기 위해 매번 노력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번처럼 그리고 사무실 문제처럼 커다란 것들에 방씩 얻어 맞는 순간이 오면 

와르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노력따위 쓸모 없다, 내가 그렇지 , 나는 해도 안되는 인간이야

결국 내가 망쳤어, 라는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에 휩싸인다. 

 

그래도, 무너지려 하는 순간에 너무도 우연의 일치로 책을 읽게 것은 

어쩌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의 도움일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여행을 다시 떠나도 좋고 떠나지 않아도 좋다.

갑작스럽게 멈출 밖에 없게 되었지만, 나쁘지는 않다

살아가는 자체가 여행이니까. 괜찮다.

 

돌아가면, 그렇게도 보고싶던 우리 고양이들, 친구들 있으니

맛있는 먹고 한국을 느낄 있으니, 좋다

그러는 동안 여행의 의미와 삶의 의미가 짙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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