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가는 여정/임신

시험관 시술~임신 초기 : 두려움, 주사, 병원방문횟수, 난임카페, 식이, 가족과 지인, 입덧 등

담연. 2023. 7. 1. 08:00

앞선 포스팅에서는 시험관 시술 과정 1, 2편과 시험관 시술 과정 동안의 비용, 난임시술지원비, 임신출산진료비, 국민행복카드 신청 방법 등에 대해 글을 남겼다.
 

시험관 시술 과정 기록 1 (난임 검사, 시술 결심에서 난자&정자 채취까지)

나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결혼한지 만 3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과 자연임신을 시도하여도 소식이 없길래, 머리 아프기 싫어서 난임병원을 찾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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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시술 과정 기록 2 (배아 이식, 심장소리, 임신 10주 차 난임병원 졸업)

시험관 시술 과정 기록 1 시험관 시술 과정 기록 1 (난임 검사, 시술 결심에서 난자&정자 채취까지) 나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결혼한지 만 3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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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시술 지출 비용,  난임시술지원비, 임신출산진료비, 국민행복카드 정리

그렇게 나의 첫 시험관 시술 과정이 끝이 났고, 현재 태아는 18주 차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사실 2차 시도를 염두에 두었을 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었다. 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몰랐으니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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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덜 딱딱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볼까 한다. 


시술에 대한 두려움

- 나는 쓸데 없이 윤리의식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시술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 자연스러움을 거스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정도로 자녀를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원하니까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조금 더 강했다. 물론 건강한 가정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 과정이 무섭기도 했다. 주사를 직접 놓는다고?!?!? 무서워...... 잔인해...... 
 
- 그런데 제왕절개 같이 모든 진료 과정 자체가 의학+과학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문제가 있으면 의술을 도움을 받는 것은 현대 사회인으로 누릴 수 있는 이점 중 하나 아닌가? 오히려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 같은데? 난임 시술이 한 두 해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이것을 통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들고 잘 살아가는데 왜 내가 굳이 그것에 반기를 들려고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시술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주사와 질정, 그리고 약 챙겨 먹기

- 주사는 생각보다 무섭거나 아프지 않다.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고, 아무렇지 않게 다다닥 놓고 정리하게 된다. 
 
- 물론, 과배란유도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배가 엄청 붓기도 하고, 똑같이 주사를 놓는데도 유난히 아픈 날도 있고 그렇다.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한다. 기록을 보면, 2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하루에 2-3대 많게는 4대까지 주사를 놓았다. 이식 후였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잠시 주사를 맞지 않는 날이 며칠 있었던 것을 빼고는 두 달 가량 매일 맞아야 하니 멍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지 멍이 심하게 들거나 넓게 퍼지지는 않았다. 
 
- 오히려 질정이 더 성가시다. 나는 매일 밤 특정 시간에 넣어야 했고, 질정을 넣고 나면 유분기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바로 눕는 것을 택했다. 자연스럽게 수면 시간이 9시반, 10시로 앞당겨진 것은 좋았다. 질정은 3월 6일 그러니까 채취 2-3일 전부터 난임병원 졸업 때까지 두 달 꼬박 매일 넣었다. ㅠㅠ 편리한 생리컵도 쓰기 싫어서 면생리대로 바꾼 나인데, 질정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요령이 생겼다 싶으면 또 들어가지 않기를 반복함. ㅋㅋㅋ 다행히 떨어뜨린 것은 한 알 밖에 없긴 했다.
 
- 약. 나는 아파도 병원에 가거나 약을 챙겨먹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내 평생 먹어야 했을 약을 이 번 기회에 다 먹은 것 같다. 아르기닌, 어린이용아스피린, 소론도정, 영양제 등등.. 성분도 효과도 모른 채 그냥 병원에서 먹으라고 하는 대로 먹었다. 규칙적인 인간인지라, 어려움이 없기는 했다. 
 

잦은 병원 방문

- 나는 근무 스케쥴이 유동적이어서 시간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정해주는 스케쥴에 무리 없이 맞춰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근무지와 병원이 걸어서 5분 거리인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 난임검사 하느라 오간 횟수와 타 병원 전원 전 비는 시간에 확인 차 방문 했던 것 빼고 두 달 간 최소 12번 병원에 다녀왔다. 주사를 시작하고 임신을 확인하기 까지 한 달 동안 8번을 다녀왔다. 이 것은 최소다. 나는 생리가 시작된 날부터 주사를 시작하였고(=단기요법)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 풀타임 근무자라면, 근무 시간이 더 긴 사람이라면 혹은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어 병원 방문하는 것 자체가 정말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나도 채취, 이식 때 정말 스케쥴을 빼기 곤란한 경우가 있었는데, 결국 스케쥴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 시술을 결정했다면 각오해야 할 문제다. 요즈음은 난임시술 관련 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도 하니 자신의 상황에서 최대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므로, 가볍게 접근할 문제다.

식이와 운동

- 나는 특별히 음식을 챙겨 먹거나 가리지는 않았다. 그냥 조심하는 정도였다. 배달음식은 가급적 피하고, 집에서 재료를 손질해서 먹으려 했다. 그래봤자 신선채소는 많이 섭취 못했던 것 같다. 어차피 모자란 영양분은 비싼 영양제들이 역할을 해 줄 터였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그저 적당히 먹고 적당히 걸어 다녔다.
 
- 즉 운동도 특별하게 하지 않았고, 원래 하던대로 출퇴근 시 시간 날 때 일주일에 3-4회 50~60분 걸었고 집에서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었다. 
 

난임카페

- 난임카페에는 온갖 정보들이 넘쳐난다. 채취 전에는 뭘 조심하고 뭘 먹고, 이식 후에는 뭘 조심하고 뭘 먹어야 하는지, 잘 때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심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지 등등... 나는 그냥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안된다는 글도 봤다. 그럼 그저 나는 운이 좋았던 가보다. 
 
- 진료 때 물어보지 못한 부분을 물어 보거나 6주 차 때 난황이 보이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도닥이는 등 유용한 정보와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난임카페에서 같은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이 고된 경험을 누구와 그리 진하게 공유할 수 있겠는가. 제일 가까운 남편에게도 일일이 말하기도 어렵고. 
 

가족과 지인

- 나는 시험관 시술에 대해 남편과 시술 경험이 있는 지인 1명에게만 알렸다. 모친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시술을 했음을 전했고, 나머지 어른들에게는 전하지 않았다. 임신 확인 후 정말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시험관 사실을 알렸다. 숨긴다기 보다는, 뭐랄까, 그냥 굳이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이 과정을 경험하기 전에는 이상야릇한 선입견? 편견? 혹은 그것에 미치지는 않더라도 곱지 않은 시선? 온갖 의문점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남편은 중요한 날에 꼭 병원에 동행을 해주었다. 난자 채취 때(같은 날 정자 채취를 함), 이식할 때, 두 번째 피검사 들을 때 등등..  첫 난임병원 방문은 남편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다소 즉흥적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몇 번 혼자 왔다갔다 했지만 이후에는 고맙게도 동행해 주었다. 
 
- 과배란유도주사를 맞을 때, 그리고 임신이 된 후 초기에 입덧+극심한 무력감+우울감+불안감 등으로 너무 힘들었을 때 남편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덕에 호르몬 변화로 인한 감정기복(짜증 등)은 거의 없었다.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버텨야 하는 몫을 그저 버텨내었고, 남편은 그런 내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해 주었다. 
 
- (입덧이 줄어들고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내 기력이 회복되자 남편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집안일 미루기, 눈치 보며 말 안듣기, 징징거리기 등등...ㅋㅋ )
 
- 지인은 경험이 있기에 내 병원 진료와 과정과 컨디션을 계속 물어봐 주고 마음을 써주었다. 나중에는 꽃다발도... 그녀도 남편 만큼이나 내게는 큰 의지처가 되었다. 
 

입덧

- 생전 처음 겪는 느낌들. 두 번 다시는 임신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두 달 간, 속쓰림, 무기력, 우울, 귀멍멍함, 심계항진 등 너무 괴로웠다. 물론 6주차 때 난황이 보이지 않으면서 시술 실패에 대한 걱정이 우울에 한 몫 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정말 내가 미친 것 같았다. 후기를 보면 피부 뒤집어 짐, 두통, 토덧 등등 온갖 증상들이 난무하던데 그런 것은 없었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미친 듯이 쓰리고 입맛이 너무 없다는 점 외에는... 
 
- 입덧 기간 동안 3kg이 빠졌다. 눈에 띄게 군살이 줄어들었고, 남편이 걱정을 할 정도였다. 남편이 퇴근 길에 데리러 오기 시작했고, 10주차? 12주차 부터는 그냥 내 차를 끌고 출퇴근을 했다. 임산부 뱃지가 있어도 대중교통 시 임산부 석에 마음 편히 앉기 힘든 것도 한 몫 했다. 
 

악몽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종종 악몽을 꿨다. 지금도 배에 이유 모를 통증이 느껴지만 악몽을 꾼다. 유산하는 꿈, 수술방에 들어가는 꿈.. 악몽을 꾼 후에는 나를 더 다독여 준다. 불안하구나..하면서.

평정심과 감사함

- 과학의 도움으로 임신을 이루어 내는 것이지만, 일정부분은 운에 따르는 면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희일비 하지 않고 부정과 긍정의 균형을 지키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계속 관찰하였다. 물론 난황이 보이지 않은 6주 차 부터는 좀 흔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 때에도 감정을 계속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고, 필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집중했다. 
 
- 사실.. 1차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임신 과정이 힘들기는 했으나 내가 유별나게 힘들어 했던 것도 아니고, 입덧 증상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고, 과정 중 아기가 늦게 나타난 것이나 임신 후 약간의 피비침이 지속된 것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다. 물론 실패했더라면 잠시 우울해 하다가 다시 시도했겠지만, 고된 마음을 가눌 길은 없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도 태아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제 스스로 잘 자라고 있다. 
 
- 신기한 일이다. 온갖 세상 만물에게 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특히 임신 확인 후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그리운 이들에게서 연락이 온 점이 정말 신기했다. 더욱더 겸손해지고 더욱더 겸허히 나를 내어놓고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 밖에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깨달았다. 

 

- 지금 이 순간에도 난임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더욱더 겸손해져야겠다. 그리고 내가 감사히 받은 것들을 나누고 베풀어 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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