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52

[발리] 두 달간의 조촐한 수기 ㅡ 우붓. 불안, 관계에 대한 단상들

2/19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자기위안정말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순간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이 있다. 침습적 사고 혹은 침습적 이미지라고도 하는 그 것. 어떨 때에는 그것이 내가 과거에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를 했거나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꼈던 장면이기도 하고, 머지 않은 미래에 나는 이러한 일들을 경험할 거야, 하는 상상의(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실들에 기반한 추론적인) 장면들이기도 하다. 과거의 장면들이 지나갈 때에는 한심했던 내 모습에 속이 쓰라리기는 하여도 '그래, 이런 식으로 다시 한 번 떠올린 후 깨끗하게 정화가 되는 거야' 라며 나름대로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미래의 장면들이 상상될 때에는 야릇한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문득문득 상상하는 불안하고 기분 나쁜 ..

떠남 2017.04.30

[발리] 두 달간의 조촐한 수기 ㅡ 우붓, 새 집에서의 첫 일주일 기록

2/11 토 밤.일기를 걸렀다. 아휴.. 며칠 내도록 비가 참 많이 내렸다. 수요일에는 무엇을 하였더라? 장염으로 고생했나? 아무래도 맛이 이상했던 생수 때문인 것 같다. 목요일에는 그냥 쉬었다. 배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균이 혼자 마트도 다녀오고, 혼자 음식을 해서 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다 했다. 미안하였다. 사실 다른 투숙객들을 위한 요리를 하는 주방에서 우리 둘이 어슬렁거리기가 눈치도 보였고(균은 아니고 나만 눈치를 보는 듯) 몸이 아파 귀찮기도 했고 내 주방이 아니니 무언가를 하기가 싫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균이 죽을 끓여 주어 잘 먹었다. 그리고 이사갈 집에 짐을 가져다 두었다. 두 세 시쯤. 주인아저씨는 늘 웃으면서 반겨 주신다. 유머도 있으시다. 체크인 날이 금요일인데 우..

떠남 2017.04.30

[발리] 두 달간의 조촐한 수기 ㅡ 우붓 정착기 1

우리는 호치민에서 발리의 덴파사르 공항으로 넘어왔다. 1박에 8천원인 게스트하우스에 픽업 요청을 했더니 비행기 타기 전날 영상통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 무튼 픽업에 30만 루피아. 우리 돈으로 3만원. 가격 흥정을 하여 편도 택시를 타는 것이 더 저렴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편하게 가기로 했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두 달이 시작되었다. 첫 2일은 우붓의 게스트하우스, 3주는 작은 리조트 형태의 숙소, 한 달은 빌라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초대해서 관광, 3일은 길리섬으로 이동, 나머지 며칠은 꾸따로 이동해서 지냈다. 제주도의 3배의 면적에 달하는 발리 중 우붓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만 한 달 반을 지냈다. 요가를 목적으로 발리에 갔지만 정작 수업은 세 번 밖에 듣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떠남 2017.04.19

[베트남] 달랏(Da Lat) 9박, 계속 머물게 되던

달랏. 9박 껀토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달랏까지 한 8ㅡ9시간 달린 것 같다. 푸꾸억 섬에 가고 싶었는데, 이 당시에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될대로 되라, 균 니가 어디 한 번 해봐라, 는 심정으로 달랏으로 질러버렸다. ..... 동이 트기 전 달랏에 도착했다. 고원지대에 위치한 것 답게 상당히 쌀쌀했다. 1년 내내 선선한 기후로 많은 사람들이 휴식 차 찾는 휴양지라 한다. 프랑스 시대의 예쁜 건물들이 많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의 달랏.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에서 알아본 호텔로 직행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매일 하루 씩 하루 씩 연장해 가며 결국 9박, 그러니까 비자기간을 다 채워버릴 때까지 눌러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달랏에서 한 건 없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필수로 한다는 트레킹, 캐녀닝..

떠남 2017.04.19

[베트남] 껀토(Can Tho), 2박 3일. 메콩강 하류 수상시장

껀토. 2박 3일.첫째 날 : 도착둘째 날 : 껀토 시내 구경셋째 날 : 메콩강 수상시장 구경 1. 첫째 날. 도착.껀토 터미널에서 시내로. 터미널에는 밴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터미널을 빠져 나와 큰길로 가는 입구에 바이크 택시가 있음!! 2대를 잡아타고 껀토 시내로 감. 여행자의 거리에서 묵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음. 그러니까, 메콩강 수상시장 투어를 가려면, 강 하류에 위치한 여행자의 거리에 숙소를 잡고 인근 항구에서 개인적으로 배를 구하거나 여행사 투어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까이랑 시장에 더 많이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음. 새벽에 강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고, 까이랑 시장 너머에 있는 다른 시장도 둘러보기 위함이기도 했음. 강 하류에서 그 뒤에 있는 시장에..

떠남 2017.04.19

[베트남] 호치민(HoChiMin city) 2박3일, 반미와 포의 매력.

호치민 2박 3일.첫날 : 도착 및 숙소 구하기 둘째 날 : 호치민 시내 관광셋째 날 : 껀토로 이동 1. 첫째 날. 도착. 호치민. 밤 6시경 도착. 공항에서 심카드 구입. 3.5GB의 용량, 다 쓰고 나면 저속으로 한달 내 무제한 사용, 1만원 좀 안했던 것 같다. 공항앞에서 여행자의 거리인 데탐거리(De Tham)에 가기 위해 109번 버스를 탔다. 차장 아가씨가 돈도 걷고, 내릴 곳도 친절히 알려 주어 Đối diện 171 Phạm Ngũ Lão 정류장에 하차하였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왔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숙소를 여기저기 알아 보았다. 너무 좁은 골목에 마치 드라마 세트장처럼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었고 재미가 있었다. 중국도 홍콩도 아닌 베트남의 풍경. 굉장히 ..

떠남 2017.04.19

[베트남] 14일간의 짧고 조촐한 기록

이동경로 : 호치민 2박 ㅡ 껀토 2박 ㅡ 달랏 9박 ㅡ 호치민 턴 후 발리로 떠남 그 곳에서 나와 치앙마이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넘어가 하루 밤 지낸 후 베트남 입성. 베트남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엉덩이가 너무너무너무 무거워서 계획했던 곳 반 이상을 가지 않음. 베트남의 무이네, 푸꾸억 섬, 다낭, 호이안, 훼 등을 거쳐서 라오스 팍세로 넘어간 다음, 캄보디아로 가겠다던 나의 장대한 꿈은 처참하게 무너짐. 베트남에서는 거의 메모를 하지 않아 회상에 의지하여 기록 시작.

떠남 2017.03.01

[그 곳] 6. 함께한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헤어짐

그 곳을 떠나온 지 어느 덧 두 달이 다되어 간다. 괜히 어딜가도 그 곳만한 곳이 없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만한 사람이 없고 그랬다. 어딜 가도 그 곳과 비교되는 그런 저런 시간이었다. 그 곳에 있던 당시에는 하루하루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떼우고 빈둥거리며 게으르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들을 했다 싶다. 11월 중순을 지나서부터 약 한달 정도 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균과 모모씨는 숙소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어 매우 분주했다. 문제의 장기수분들의 집에 기거하기도 했고, 뉴페이스 능력녀(그녀를 묘사하려면 한 두 줄로는 안되니 세글자로 수퍼압축함)와도 자주 어울렸다. 여기 저기를 쏘다니고, 온갖 한국 음식들을 해먹고, 여러 번 숯불을 피우고, 눈꼽도 채 떼지 않은 상태로 대충 만나 ..

떠남 2017.02.28

[그 곳] 5. 연민, 변명

12월 말. 이모에게 생전 처음으로 편지를 쓰다가 눈물이 터졌다. 해맑게 이 곳의 행복한 시간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너무도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들과, 뿌리 깊은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만하면 됐는데, 뭐가 이다지도, 아니 아직까지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기분이 좋지 않다.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대체 무엇에 그렇게 쫓기듯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버린 돌덩이 마냥 세상의 온갖 힘겨움을 짊어 안은 것처럼 살았을까. 이 서러움의 눈물 속에는 그 시간을 과연 이모가, ..

떠남 2017.02.28

[그 곳] 4. 반성 혹은 오만한 생각, 그 이면의 불안과 꿈

근 한 달째 되는 날. 심리학의 틀로 사람을 보는 것에 질려 도망쳐왔는데. 오히려 심리학을 더 잘 이해해서 타인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해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나는 심리학을 잘 몰랐기 때문에, 심리학의 틀로 바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망을 쳤던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감정 없이, 어떤 내 솔직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상태로, 지식 그 자체만 일명 '씨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은 너무도 자아도취적으로 느껴졌고 자만과 오만의 그림자가 들러 붙어 있는 자기애적인 사람이면서 그렇지 않은 척 지식을 방패삼아 가식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듯 느껴졌었다. 그런데, ... 그 역시, 지식을 잘 이해하여 내 것으로 소화시키..

떠남 2017.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