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간/생각의 구름

가족의 의미.

담연. 2018. 8. 9. 23:57

동생의 남자친구로부터 뜬금 없이 커피 한 잔 하자는 문자를 받았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그러자고 했다. 답이 없길래 집 인근 카페로 오겠냐고 묻자, 출발한다고 했다. 


몇 번 만났었지만 단 둘이 보는 건 처음이기에 어색하면서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나랑 동생은 열한 살 차이가 나는데, 동생의 남자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지하면서도 다소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으로 그는 내게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아이의 이런 저런 모습을 2년 전부터 보아왔는데, 나만 알고 넘어가야 할지,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넘어가고 덮어 두는 것은 가족들에게 좋을 것 같지 않아서 고민 끝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 전 집을 나갔을 때 죽고 싶고 살기 싫다는 소리를 자주 했었고, 아직도 가족들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들, 그러니까 얼른 취직을 해서 집을 나가겠다, 우리 가족도 불편한데 내가 니네 가족을 왜 만나냐, 와 같은 소리를 한다. 가족들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가 뭘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틀 전에 나와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 15가지를 통보 받았다. 13가지는 내 잘못이었고, 두 가지는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가족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면서 그는, 한 시간 후 헤어질 때까지 '절대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도와주십사 하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가족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알리는 것이다' 라는 말을 수 차례 반복하였다.




조금 난감했다. 난감한 웃음이 났다.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그리고 너무 심각한 문제라는 듯 이야기를 꺼냈기에, 그 면전에 대고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살짝 혼란에 휩싸여 두서 없이 여러 이야기를 지껄였다. 그 아이의 반항심은 내가 딱 10년 전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모습과 내가 가족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원망과 증오의 감정과 닮아 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나쁘게 대했던 것들이 이제 나에게 화살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한 걸 잘 알고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곁에서 견디고 지켜봐주는 것 뿐이다, 등등의 개소리들을.


그는 계속 반문했다. "다들 보통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꿈꾸지 않나, 그런데 그 아이는 가정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한다. 이게 사춘기인지, 변하지 않을 생각인지, 점차 변할 것인지 모르겠다". 



더욱 난감했다. 그리고 또 웃음이 났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이해시킨들,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역시 중학교까지 할머니 손에서 컸고, 부의 알콜중독, 여자문제, 도박 문제 등으로 관계가 매우 나빴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은 가족을 생각하고 챙기고 단란한 가정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우했던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그 아이는 그렇지 않지 않냐' 는 것이다.


당신은 동생과의 미래를 꿈꾸는데 동생은 그것에 따라주지 않으니 걱정이 많이 되시겠다고 하니, 그는 극구 부인한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리 단란한 가정을 꿈꿨는가. 20대 초반에도 가족들이 좋았는가". 


그러자, 그는 난감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동생도 아직 좋은 가족 경험이 없고, 가족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고. 이제 곧 사회에 발을 내딛을 입장에서 가족들이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 결핍감과 원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결국 자신의 울타리는 가족임을 알게될 것이라고. 



그가 이해했을까.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는데, 내가 더 해줄 말은 없었다. 마침 구세주처럼 카페 마감시간이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상태는, 서로 다소의 삐걱거림이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사이가 완전히 나쁘거나 파국적이지는 않다. 적당히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힘듦을 굳이 내세워 보이지 않아도 '가족이기에' 서로의 노고를 느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가 미워도 내 그 마음을 다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그러다 다시 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애증의 관계이기에, 마음 속으로 혼자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우리 모두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움과 밉지 않음의 마음들이 번갈아가는 동안, 결국 내 곁에 남는 것은 가족이고, 결국 내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족임을 경험적으로 알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 가족처럼, 관계가 파국적이지는 않지만 화목하거나 서로 가깝지도 않은 어정쩡한 가족에게는 위와같은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가족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족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 새벽녘에 동이 트듯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나의 동생은 그 긴 터널 초 중반 쯤에서 고군분투하며 걷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는 때로는 같이 걷기도 하고 때로는 저 멀리 터널 출구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걸, 그는 어떻게 이해를 할까. 




나는 동생이 아니었다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저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으로 살면서, 속으로는 원망과 미움을 품은 채 삐뚤어지게 살았을 것이다.


동생은 나와 부모라는 가족 사이 딱 중간 지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나 역시 동생이 밉고 부담스러운 순간이 있지만, 결국 내게는 단 하나 뿐인 소중한 동생이자 평생의 친구임을 느끼고 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가족으로부터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가족에게 의지하고 지지를 얻고 있다. 


새삼 느낀다. 가족이기에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과정을 헤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느끼는 동생의 불안정한 상태가 내게는 지극히 이해와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기에, 참, 입장이 난처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애 키운다고 그가 고생이 많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그 둘은 왠지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무튼 그 전까지, 서로가 서로의 다른 입장차이와 속도를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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