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자 원로(?)이신 오상우 교수님이 추천하신 도서이다.
절판된 책이었는데, 다행히 중고로 구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신경정신건강의학과 1세대 원로이신 노동두 선생님의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저서이다.
노동두 선생님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10대 후반에는 경기중 진학 후 노동 착취도 당하시고,
20대 때 법대에 진학 했다가 의대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광복과 6.25 사변도 경험하시고,
전쟁 통에 무사히 살아남은 후 미국에 유학을 떠나셨다.
국내에 오셔서는 정신과에 개방병동과 소아정신의학을 처음 도입하셨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활동에 힘을 쓰셨는데
인상깊었던 것은 정신과적 질병에 가장 큰 원인으로 가족요인, 가족간의 대화를 강조하시고
80년대에는 가족치료학회를 창설하기도 하셨던 점이다.
그 발자취를 보면 굉장히 진취적이고 과감하며 사명감 가득하다.
노동두 선생님은 대한민국 현대사 및 대한민국 정신과 역사의 산 증인이셨다.
유복한 집안에서 좋은 지능을 물려받으신 것 같은데,
이분의 가장 큰 자원은 어질고 현명하신 조부모 및 부모님들로부터의 훌륭한 가르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현명한 가르침 덕분에
10-20대 그 모진 시절을 잘 이겨내시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시고,
낯선 외국 땅에 가서도 무탈히 공부할 수 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감명깊었던 것은
혼란한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현실에 안주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끝까지 견뎌내고 해내고 결실을 맺으셨던 부분들이다.
매우 담담한 톤으로 있었던 사실들이 기술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그분의 에너지는 가히 대단했다.
존경스러웠다.
미국에서 유학하셨던 60년대는 미국에서 한창 가족치료의 붐이 일던 시기였던 걸로 안다.
그 영향으로 선생님께서도 개인에 대한 치료에 그치지 않고 가족치료적인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으리라 추측된다.
하지만 노동두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치료적 접근법이나 이론에 대한 서적은 없다.
그래서 무척 아쉽고, 과연 어떤 의술을 펼치셨을지, 치료적 견해는 어떠셨을지 너무 궁금하다.
책에는 MMPI 저자의 제자이자 우리나라에 처음 MMPI를 보급하신 임상심리학자 김중술 선생님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백병원이 처음 세워진 과정에서도 노동두 선생님이 계셨다.
정신과에서는 환자의 인지 및 심리적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대부분 임상심리학자가 담당한다.
그 시초가 책에 언급되어 있어서 너무 새로웠고,
앞서 나가신 원로들 뒤로 지금의 우리가 길게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한편의 역사 속 위인전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내가 정신과의사는 아니지만,
그 영역 언저리에서 그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사명감이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작업.
물론 치유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는 것이지만
뭐랄까,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할아버지, 증조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안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느낌이랄까.
이런 원로들의 책이 더 많으면 좋겠다.
신-구가 연결되는 느낌들을 더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세대간 가치관과 사명감이 전수되어
더 좋은 치료자들이 많이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21.10.04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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