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여행을 가겠노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대상이 늘어나고 있다.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나만큼이나 정해진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안한 사람이 주위에 꽤 있다는 것과,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불안 때문에 현실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점이었다.
갑갑하고 답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지만 생계를 위해서 혹은 개인적인 불안감에 의해서 등 다양한 이유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데, 나는 간다.
커밍아웃을 하면,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장기여행에 대한 상대방이 가진 이상과 바램 혹은 어떠한 감정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마치 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인 마냥,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인 것 마냥 비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매우 은근하고 미묘하게 불안을 조장하며 염려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커밍아웃은 마음을 꽤 불편하게 만든다. 여행을 선택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사실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던 아주 큰 기준과 잣대였고, 그것을 포기하려고 마음먹기까지가 상당히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커밍아웃 순간 그 힘들었던 의사결정의 과정을 언급하지 않는 내 잘못도 있겠으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과정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다.
사주로 따지면 신강한 사람이 있고 신약한 사람이 있다. 이것을 내 주관적으로 해석해보면, 신강하다는 것은 외부의 영향에 큰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기준, 중심을 잘 유지한다는 것이고, 신약하다는 것은 작은 일에도 쉽게 영향받고 흔들흔들 휘청휘청거리며 힘겨워하여 갈피를 잡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사주상) 상당히 신약한 사람이고, 실제 살아온 과정도 그러하다. 겉으로 보기에 누구에게나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해나가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지만, 나는 인생의 매 순간이 혼란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항상 우물쭈물해하고 겁을 낸다. 모든 일에 있어서 불안과 긴장, 걱정, 부정적인 마음이 앞서고 이로 인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데에 지나치게 많은(거의 전적인) 에너지를 투여한다. 여유가 없고 눈 앞에 당장 닥친 일에만 급급해한다.
왜 신강 신약 이야기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는데, .. 자꾸 나에 대한 변명과 변호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는 마음일까. 일종의 알량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마음인 것 같아 급 부끄러워진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밝힌 여행에 대해 별다른 감정,생각이 없을 수 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기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일테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상당히 paranoid한 것이고 사주로 설명하면 매우 신약하다는 것이며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면 그냥 애가 좀 ... 너무 생각이 많고 눈치를 보고 소심하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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