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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첫 1년, 아기는 나에게 절대적 의존이 가능하였는가. 본문

부모가 되어가는 여정/육아일기

생후 첫 1년, 아기는 나에게 절대적 의존이 가능하였는가.

담연. 2025. 5. 9. 23:21

그리고 나는 아기에게 얼마나 몰입하였는가.

 

'엄마가 철학할 때'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를 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니콧의 이론을 토대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분석, 대상관계, 생후 첫 1년, 충분히 좋은 엄마, 등등의 용어는 내게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아기가 돌이 되기 전까지 마음 한 구석에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용어들이기도 하다. 무튼, 책에서 또 언급된다. 생후 첫 1년 아기가 엄마에게 절대적 의존 경험을 해야 인생을 편안하게 산다고. 물론 넉넉잡아 생후 6년이라고 설명을 하기는 하지만, 애써 묻어두고 싶어도 묻어둘 수 없는 나의 죄책감이 자극받아 글을 쓰게 된다. 

 

우리 아기는 나를 통해 어떠한 자기표상과 대인표상을 만들었을까. 

우리 아기는 생후 첫 1년동안 나에게 절대적 의존을 할 수 있었을까. 

 

염려되는 몇 개의 장면들이 있다. 

 

- 아이는 남자 어른을 무서워한다. 사바사 케바케라 종잡을 수 없기는 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뜨지 않는다. 특히 내 친구의 남편이나 아이의 고모부를 만나면 심하다. 

 

- 아이는 낯선 누군가가 건네는 것을 선뜻 받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불신인가? 그런데 나도 어릴 때 그랬다고 한다. 

 

- 나는 아기가 생후 4-5개월 때부터 간간이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기는 나를 반기지 않았다. 반면, 아기 아빠나 친정엄마가 오면 무척 반겼다. 당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심장이 쿵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아기가 내게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 왜 자기를 두고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냐며. 나는 아기와 관계를 잘못 맺고 있는 것인가, 나의 부재가 아기에게 심리적 충격을 안겨준 것인가, 하는 생각들로 핏덩이를 떼어 두고 일을 하러 나간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천천히 아기를 관찰하면서 내 나름대로 '엄마는 늘 집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이 되어서 밖에서 집 내부러 들어오는 엄마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합리화하며 그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기가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 아기가 70일 정도 되던 때였을까, 잘 모르겠다. 무튼 100일 전이었던 것 같다. 아기가 도무지 잠에 들지 않아 나는 언성을 높이며 아기에게 화를 낸 적이 두 번 정도 있다. 떄마다 정말 미묘한 찰나였지만, 아기가 순간 얼어 붙었던 것 같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뭔가 나의 요구에 따르려는 것 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런 미묘한 상호작용이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 가끔, 남편에 대한 분노와 아기 이유식과 아기 수면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말 그대로 '그로기' 상태로 아기를 돌본 시기가 있다. 우리 아기가 물건을 잡고 서기가 가능한 때였던 것 같다. 누워서 대충 반응해주고, 멍하니 있고,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오면 아기를 맡기고 방에 들어가 쉬기만 했다. 그 시기가 며칠 정도로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죄책감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 외의 시간에 나는 우리 아기에게 정말 몰입했던 것 같다. 있는 힘껏 웃어주고, 놀아주고.. 물론 집안일이나 업무를 하느라 시선을 돌리고 있는 때도 많았지만.. 아기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고 최선을 다해 반응했다고 생각된다.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런 나에게 우리 아기는 얼마나 의존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아기가 표현하는 것들을 토대로 추측을 해야 한다. 아기가 만약 지금까지 나와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회복할 수 있으니 너무 염려 말자. 지금처럼,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 최선을 다해 눈맞추고 웃고 대화하다 보면 아기는 나도 모르는 새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있을 것이다. 지금 아기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주는 것 말고는 없다. 

 

아기 옆에 누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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