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10월 말.
따오에서 수랏타니 공항으로 가는 조인트 티켓(따오에서 나가는 배, 공항가는 버스표)을 예약하였고, 태국 남쪽에 위치한 수랏타니 공항에서 북쪽에 위치한 치앙마이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였다.
치앙마이에서는 3일을 머물렀던가. 섬에서 바로 큰 도시로 나왔던지라, 그냥 매연 가득한 공기가 싫었고 번잡하고 상업적으로 느껴지는 님만해민도 별로였고, 그렇다고 인근 아름다운 산에 트레킹을 가거나 유명 여행지를 찾아 가려니 에너지도 없었고, 기대했던 재즈바는 국왕의 서거로 공연도 하지 않았고, 뭐 그랬다. 대신 Saturday Market, Sunday Market만 겨우 다녀왔는데, 마켓의 규모가 아주 크고 볼거리도 많아 유일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빠이로 넘어갈지,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앙라이로 넘어갈지 고민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아래는 당시에 쓴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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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한인 숙소에 묵게 되었고, 순식간에 한국어 러쉬가 들어왔다. 나는 내가 미처 이유를 채 알아 차리기도 전부터 매우 큰 불쾌감에 휩싸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으며 아무런 대꾸도 나에 대한 개방도 그들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거지가 매우 거슬렸고 또 나만의 망상에 빠져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속이 불쾌했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비난도 하였다. '똑같은 여행자인데 나는 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인가. 난 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하는가. 왜 나에 대해 오픈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인가. 왜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려 드는가'.
자기 비난에 앞서, 사실 그들에게서 이토록 불쾌감을 느끼게 된 이유가 있기는 하다. 입을 열 때마다 야릇한 여자나 연애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 놓으며 나를 언니라 부르는 중년의 남성이 나의 분노의 스모킹건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외에 잠깐 동행하는 와중에도 불평과 불만을 늘어 놓으며 은근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20대 후반의 남성,지나치게 난 너무 밝고 쿨한 철없는 사람이에요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30대 중후반의 여성..이 같은 한국인 여행자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켰던 거다.
그들을 비난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는 나의 심리적 구조나 메커니즘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 사회 어디를 가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늘 산재해 있다(너무나도 진부한 진술이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거나 속으로 혼자서 불쾌해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나의 손해다(역시 마찬가지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술이다). 그들에 대해서 내가 경험한 그 일부만으로 그들 전부를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의 원인을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을 만나도 새로울 것이 없을 거라는 비기대감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10명을 만나서 한 명이라도 나에게 자극을 준다면 보석과도 같은 만남이 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10명씩이나 만나야 한다면 안만나고 말겠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 도무지 짧은 시간 내에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이들과 계속 부딪혀야만 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고역으로 느껴졌던 것일 게다.
사실, 더 중요한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 멀리하고 있는 나를 계속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가 가장 문제다.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에 대해 느끼고 빠져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나는 버겁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고 혼자 즐기며 만족하는 것이 매우 익숙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안전하게 느껴진다.
함입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가? 아무튼 고질적으로 반복되어온, 상당히 오랫동안 프로그래밍된 나의 심리적 시스템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나의 것에 대한 타인의 관심이 상당히 부담스러우며 적당한 경계를 유지하는 게 가장 편한, 관계패턴. 고전적인 주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좌절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좌절이라기 보다는 체념? 탄식? … 그런 씁쓸함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보면, '아직도 난 그러고 있어? 즉, 아직도 난 사람이 불편해?'... 아.. 그런데 난 사실 그걸 바꾸려고 노력은 딱히 하지 않았지. 혼자만의 사상, 관념, 의식개선을 위해서는 노력을 사뭇 많이 했으나, 관계에 대한 나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나의 패턴을 가지고도 나는 매우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오랫동안 잘 유지하고 있고, 사회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히려 때로 누군가에게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겉' 모습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나에게는 낯선 상황에서 순식간에 훅 치고 들어와 나를 당황시킨다. 분명 타인의 잘못이 아닌데, 내가 내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타인을 비난하게 만들고 나의 기분을 다운시켜 버린다.
열린 마음, 혹은 타인과의 개별성을 유지하는 것, 혹은 내 기분과 내 상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통제감 등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들을, 여태 내가 맺어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많이 접해야 겨우 조금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행에게 걸고 있는 기대 중 하나다. 과연 여행 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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