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 달째 되는 날.
심리학의 틀로 사람을 보는 것에 질려 도망쳐왔는데.
오히려 심리학을 더 잘 이해해서 타인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해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나는 심리학을 잘 몰랐기 때문에, 심리학의 틀로 바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망을 쳤던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감정 없이, 어떤 내 솔직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상태로, 지식 그 자체만 일명 '씨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은 너무도 자아도취적으로 느껴졌고 자만과 오만의 그림자가 들러 붙어 있는 자기애적인 사람이면서 그렇지 않은 척 지식을 방패삼아 가식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듯 느껴졌었다.
그런데, ... 그 역시, 지식을 잘 이해하여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탓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척 씁쓸하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다.
한 달을 보내고. 상담과 분석.
내가 도망쳐 왔던 것처럼, 현실적인 의무와 당위와 욕구로부터 완전히(사실은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다면 삶을 바꾸기 위한 색다른 행위와 시도가 가능하다면 필요 없겠지만
일상 생활을 멈출 수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지속해야만 한다면 필요한 그 것.
근데 진짜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
-빠이에 처음 왔을 때 편의점에서 지우개를 샀다. 파버카스텔 작은 지우개 2개가 무려 11밧(약 4백원) 하길래 얼른 샀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 보니 내 필통에는 커다란 잠자리표 지우개 커다란 게 들어 있네. 난 그걸 한 참 동안 며칠 동안 열심히 쓰고 있었고.
-필요 없는 것들의 연속 이후에 얻는 깨달음을 선물해주는 것이 바로 시간. 시간이라는 것.
control
매우 중요한 요인.
내가 보낼 시간에 대한 통제권의 중요성.
이 당시 꿨던 꿈.
1. 대학. 나는 수업을 들음과 동시에 다른 수업 강의를 해야 하는 입장. 심리학 개론 강의를 위해 피피티를 만들었는데 강의를 하러 가는 길에 텅 빈 슬라이드를 발견... 잠깐 다른 일이 있었는데 하. '파괴요가' 책이 판매 1위.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파괴요가가 1위인 것 때문에 절망해 있는 한 친구에게 "요새 요가명상이 인기가 장난이 아니야, 근데 파괴요가는 새로운 학문이기 때문에 책이 많이 팔렸을 거야. 그래도 곧 인기는 내려갈테니 힘내" 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고 지나갔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강의를 해야 하는데 나의 복장은 조리에 일자바지에 상의 여러겹을 막 겹쳐 입고 있었다. 초라함 그 자체. 양민에게 sos, 그녀도 답이 없다고 하고. 신발을 빌리려니 너무 크고. 안절부절 심장이 터질 듯한 기분. 결국 알고 보니 조리가 아니라 신발을 잘못 신은 것이어서 바르게 고쳐 신고 옷도 단정히 하고 강의실로 걸어갔지만 그 동안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아프다고 할까, 강의실에는 이미 20명이 와있네, 인지심리학 다큐나 틀어 주고 시간을 떼울까, 무한대로 고민. 결국 꿈인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깨어나려고 애를 써서 일어났고 땀을 뻘뻘 흘리고 심장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픔이 느껴졌다.
2. 고교시절로 돌아감.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잘난 애들이 가득가득인 그 곳. 무슨 용기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수업도 듣고 야자도 했는데 수학 수업이 한 두 차례 진행되면서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었다. 야자 때는 영어 공부를 했고. 학교의 시설은 삐까뻔쩍.
힘들었었는지, 사회생활 동안의 은사님(정도로 제한적이고 포괄적으로 진술해야 겠군)을 찾아갔다. 선생님이 밥도 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위한 아주 좋은 경험이 될거라며. 하루 밤 그 분의 이불에 몸을 뉘어 잠을 잤다. 그러고 다시 야자로 돌아갔고, 수학이 부족하니 내 주변 최고의 과외선생님이었던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비용을 협상하며 과외를 받기로 하였고, 학교 담임선생님은 야자에서 이탈한 나를 조금 혼내듯 다독여 주셨다.
꿈에서 결국 고등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이 곳에서도 나는 사회적친교 활동에 실패할 것이라는 명백한 믿음 때문이었다. 또래에 비해 나이도 많고 공부도 못하고 외향적이지도 않고 등등의 이유가 그 근거였다. 결국 나는 혼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그야말로 이중 삼중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게 뻔하게 느껴졌기에, 좌절스러웠던 것이다.
3. 이 꿈들을 꾸기 며칠 전, A와 B의 얼굴 윗부분을 칼로 도려내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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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심리학 분야 중 나는 유독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그들에 대해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여 객관적인(이라고 쓰고 다분히 주관적인) 결과물을 내어야 하는 분야를 전공하고 그 길을 걸어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내 일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혔었다. 어느 한 순간 내가 걸어왔던 그 모든 것이 거짓이고 잘못된 것이며 나는 결국 컨베이어벨트에 미끄러지듯 떠밀려서 가면을 쓰게 된,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으로 인해 깨어진 유리파편에 찔린 것 마냥 마음이 아팠다.
한 동안은 내 일상에 심리학의 'ㅅ' 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서 떠난 여행인데, 그 곳에 머물면서 시간과 생각의 간격이 느슨해지자 위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한동안 나를 다시 괴롭혔던 듯하다(사실 현재 2017년 2월까지도 그러한 생각은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라는 것이 매우 오만하고 여전히 부정적이고 왜곡된 시각에 치우쳐져 있다.
라고 쓰면서, 나는 아직도 나를 비난한다, 싶다.
그리고 저 꿈들에 대한 해석은, 괜시리 가슴이 아려와서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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