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그 곳] 6. 함께한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헤어짐

담연. 2017. 2. 28. 22:05

그 곳을 떠나온 지 어느 덧 두 달이 다되어 간다. 괜히 어딜가도 그 곳만한 곳이 없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만한 사람이 없고 그랬다. 어딜 가도 그 곳과 비교되는 그런 저런 시간이었다. 


그 곳에 있던 당시에는 하루하루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떼우고 빈둥거리며 게으르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들을 했다 싶다. 


11월 중순을 지나서부터 약 한달 정도 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균과 모모씨는 숙소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어 매우 분주했다. 문제의 장기수분들의 집에 기거하기도 했고, 뉴페이스 능력녀(그녀를 묘사하려면 한 두 줄로는 안되니 세글자로 수퍼압축함)와도 자주 어울렸다. 여기 저기를 쏘다니고, 온갖 한국 음식들을 해먹고, 여러 번 숯불을 피우고, 눈꼽도 채 떼지 않은 상태로 대충 만나 대충 국수를 사먹고 돌아와 시간을 떼우고, 잡담을 나누고, 뭐 기타 등등등... 그냥 같이 밥을 먹은 것만 횟수로 따져보면 과장을 보태어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린 동생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은 시간과 맞먹지 않을까? 


아무런 사심 없이,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나 부담감이 없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즐겁게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 많은 속내를 내비치지 않아도 그냥 느낌이 좋아 더 함께하고 싶었던 그들. 분명 과거에도 그러한 관계는 있었는데 뭔가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관계에 매혹되어 보냈던 시간들. 사소한 것을 함께 하며 즐거워했던 그 시간들. 


쓰다보니, 문장과 내용이 매우 뒤죽박죽 중언부언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움과 향수 때문에 일정부분 미화되어 아름다운 추억만 남아 있어 이성이 가닿기에 아직은 이른가 보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시간들이 상당히 꿈만 같다. 이건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그렇게 반짝였던 시간' 을 보냈던 것에 대한 향수로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그 상태와 유사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들과 공유했던 음식, 알코올을 포함한 음식의 효과이다. 그 음식이라는 것은 기가 막힌 마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끼니를 사람들과 함께하였는데, 그 '맛'을 공유한다는 것은 '우리' 라는 동질의식?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심지어 '맛' 을 만들어내는 많은 과정을 함께 하였으니, 뭐랄까, 거의 가족인 셈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를 붙잡아 주었던 그가 아니었으면 얻지 못할 값진 보석이다.





이왕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김에, 떠나온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떠나기 전 일주일 정도의 시간에 대해. 

우리는 비자 만료 날짜를 잘못 알고 있다가 급하게 일정을 이삼일 앞당겨 떠나야만 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에는 충분했지만 부족하게만 느껴져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는 며칠을 보내었다. 무심코 지나다니던 그 길 그 풍경 그리고 사소한 일상들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게 다가와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좋아했던 곳에는 한 번 두 번 더 가서 마음 가득히 담아두고 싶었다. 비자런을 하고 돌아오라, 집 떠나면 돈만 쓰게 되고 고생만 한다, 는 스님(생각할수록 감사한 그 분)과 다른 이들의 진반농반 그 말에 괜시리 마음이 동하여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우리는 떠나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떠나는 날 아침, 우리가 뭐라고, 하나 둘 배웅을 와준 거다. 한 명 한 명 모두 애틋했고(ㅡ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헤어지기 싫었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래 다음에 저기서 만나' '뭐 언젠가 한 번은 꼭 다시 볼 것 같은 느낌이야' 라는 말을 들었던 거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비슷한 느낌을 공유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그랬나, 부끄럽지만, 밴에 올라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헤어지기 싫었다. 더 함께하고 싶었다. 질릴 때까지 말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들과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이 그립고 궁금하다. 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만나면, 또 별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고 먹고 마시고 그러겠지. 그 시간도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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