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정신치료 책을 펼쳤다. 어디까지 정리했었는지 가물가물하여 뒷부분부터 읽었다.
도정신치료의 역사, 이동식 선생님의 행적, 업적, 서양 치료자들의 반응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내 마음을 자꾸 건드리는 부분은, 치료자의 인격적 수양, 이론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것, 존재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치료자의 자비심, 치료자의 깨끗한 마음, 환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하는 질문, 자기자신이 되라! 하는 부분들이었다.
O선생님에게 상담을 받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내가 무언가 부드럽게 물었다.
너는 왜 치료자가 되고자 하느냐.
나는 말한다.
한 때 2년 동안 한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처음 6개월 동안은 정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어요.
라고 말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때 그 공간,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나의 두려움과,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울컥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선생님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늘 거기 제 앞에서 저와 함께 '있어' 주셨어요. 그 이후, 제 마음 속에는 항상 그 선생님이 존재했고, 뿌리 없이 흔들리는 느낌으로 살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 주셨어요. 그걸 느끼면서, 평생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나 역시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어야겠다, 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은' 느낌인데, 이것 역시 제 욕심일까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 곳에서의 나의 첫 내담자가 떠올랐다.
어느 날 나는 그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여기 마치 그가 있는 것 같고, 그의 마음 속에도 제가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제가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했다. 조금 낯부끄러운 말이었는데.. 근데 나는 그게 진심이었다.
이것이, 치료자의 어떠한 역전이, 혹은 치료자의 마음이 비어있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O선생님에게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올라오는 요즘이다.
정신치료를 하는 치료자는 도를 수행하는 수행자와 같다.
여전히 좌충우돌, 뒤죽박죽, 이랬다 저랬다, 했다 말았다, 하지만,
굽이치는 길목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되돌려 주는 경험들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길이 맞나 싶은 의구심과, 이제 걸음을 떼어도 되지 않을까, 언제까지 해야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안다.
나는 계속 걸어 갈 것이고, 어딘가에 도달하면, 또 무언가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뚜벅뚜벅. 거북이 같이 느리지만, 한결같이.
그 모든 아픔의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해준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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