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간의 고된 트레킹을 중단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가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먹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마지막 트레킹 날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외쳤을 정도로 정말.. 정말 간절했다. 하지만 한국행 비행기 편도 60만원이라는 기절할 것 같은 가격을 보고서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 눈물을 뚝 그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한국 음식들이었다. 타멜 거리를 정처없이 어슬렁 거리다 한국어와 태극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눈여겨 봐두었다가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타멜에서 쉬는 일주일 동안 거의 맨날 한국음식 식당을 찾아갔을 정도로 우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지친 심신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다.
우리가 갔던 식당은 경복궁, 대장금, 소풍, 축제(ㄱㄴㄷ순) 총 4개로, 어쩜 하나같이 가게 이름이 한국냄새 풀풀 나는 데다가 어느 하나 우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음식 맛이 좋았고 매번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모든 가게의 메뉴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김밥, 라면, 떡볶이 등은 기본이고 비빔밥, 닭볶음탕, 제육볶음, 찌개류, 국밥류, 삼겹살 등 고기구이류, 백숙, 각종 전까지. 도대체 이 많은 음식의 레시피를 다 알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국 음식의 총 집합체였다. 게다가 곱게 세팅되는 수저, 좌식 테이블, 김치와 깍두기가 기본으로 포함된 밑반찬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그 작은 요소들을 이국땅에서 마주하자 우리는 그렇나 감동하고 향수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특히 그 '익숙한 맛' 이라는 것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집단무의식과 관련된 내 존재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달콤한 것이었다.
매 식당을 옮겨 다니면서 재미가 쏠쏠했던 점은 기본 세팅의 차이뿐만 아니라 보통 반복적으로 시키는 같은 메뉴의 다른 버전을 소소하게 비교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가격이 네팔 물가 대비 약간 비쌌는데, 보통 네팔리 음식점에서는 한 요리 당 2-3천원 내외로 먹을 수 있는 것에 반하여 한국 음식들은 4-5천원 내외 수준이어서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잘 못하는 것인지 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구글지도에서는 소풍과 경복궁만, 다른 지도 어플인 maps me 에서는 경복궁, 축제만 검색이 가능하다(2016년 11월 현재). 대략적인 위치를 알면 한글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걱정은 마시길.
> 타멜, 한국 식당의 대략적인 위치.
다녀왔던 순서대로 약간의 후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우리는 여행 다니면서 한국음식 식당은 잘 찾지 않는 편이다. 네팔에서는 2주 동안 산 속에서 정말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억지로~ 억지로 겨~우 겨우 먹어 가며 고되게 트레킹을 하고 내려온 직후였던 지라, 모든 한국적인 요소들이 마치 먼길 떠났다 돌아온 새신랑을 만나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맛이나 식당 자체에 대한 감정이 극적인 부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음식 먹을 때마다 흥분했는지 죄다 사진이 이상하다. 게다가 사이즈도 확 줄였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없어진 사진도 많고. 그냥 참고 용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풍(Korean Kitchen Picnic)
산행 후 처음 찾아간 식당. 지도상 골목 중간 1층에 위치해 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식당은 허름했다. 주방은 개방 되어 있었고, 주방 옆에 좌식 구역, 옆문(?)에는 테이블구역이 있었으며 한국인이 아닌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인기짱!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며 식당 내로 들어섰다. 동그란 좌식 테이블과 그 위에 너무 당연하다는 듯 올려져 있는 나무로 된 묵직한 수저통을 보는 순간, 어라, 여기 한국인가, 하는 아주 아주 순간적인 착각이 지나갔다.
사진이 첨부된 메뉴판을 보면서 입에서 군침이 마구 돌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가슴이 얼마나 설레였던지. 마침내 나온 음식을 보는 순간 마치 고된 하루를 보내고 터덜터덜 도착한 집 식탁 위에 기대하지 못한 엄마의 스페셜 요리를 보며 온갖 고됨이 눈녹듯 사르르 흘러 내려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ㅜㅜ 거짓말 조금 보태 눈물을 글썽이며 먹었던 듯.
소풍에서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한국식 쌀밥과 김치와 깍두기다. 산을 타면서 그리고 네팔리 식당에서 풀풀 날리는(동남아 쌀보다 더 건조한 듯) 그 밥에 질려 근 2주 동안 쌀이 들어간 요리는 먹지 않았었는데 밥을 한 술 뜨는 순간, 헐 이럴 수가, 이거 한국쌀인데? 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평소 김치나 특히 깍두기를 잘 먹지 않는데 그냥 한 번 맛 본 소풍의 김치와 깍두기는 여태 내가 왜 이 맛있는 걸 싫어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았다. 물론 다른 식당들도 쌀밥과 김치의 맛이 좋았으나, 김치와 깍두기는 단연 이 곳이 최고였던 것 같다.
닭볶음탕, 제육볶음, 된장찌개를 시켰었다. 배도 고픈데다가 첫 한국 음식이었던지라 마구 시켰던 거다. 보글보글 까지는 아니지만 검고 자그마한 뚝배기에 가지런히 담겨 나오는 음식들.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꽤 매콤했던 닭볶음탕(고기는 조금 질겼다), 되직한 양념에 듬뿍 절여져(?) 밥이랑 먹기 딱 좋았던 제육볶음(기름기가 좀 많았지만…),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실컷 먹고 난 후 시키면 나오는 스타일의 맛있는 된장찌개까지. 수저를 멈출 수가 없었다. 메뉴에 가격이 꽤 비싼 삼겹살 정식(?) 이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네팔리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분이 그 메뉴를 반쯤 남긴 채 환타만 연신 들이키고 있었다ㅜㅜ그 아까운 거슬 남기다니... 아직도 후회된다. 내가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이.
> 소풍 전경. 가운데 두 기둥을 중심으로, 왼편은 주방 겸 좌식 구역, 가운데는 테이블 구역, 맨 오른쪽은 모르겠다.
> 소풍의 음식들.
경복궁(Gyoung Bok Gung)
타멜촉에서 타멜마그(Thamel marg)의 야크레스토랑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좌측에 걸린 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경복궁이라 적힌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2016년 11월)로서는 구글 스트릿뷰에 없다.
2층이었는지 3층이었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식당으로 가는 그 계단이 매우 길게 느껴질 정도로 설레임을 안고 찾아갔었다.식당 내부에 좌식테이블은 없었지만, 식당 입구를 들어서면 한국 책이 꽂힌 책장이 우리를 반겨준다. 점심 시간이 지난 2,3세시쯤 갔었기에 손님은 우리 뿐이었다. 테이블에 앉고 메뉴를 보다가 다가온 직원분이 수저와 함께 가져다준 것을 보고 우리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크게 기뻐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한국의 식당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따뜻한 오찬물(오찻물? 무튼 사투리로서 보리차를 의미함)이 눈 앞에 똭 놓여지는 것이 아닌가! 그냥 끓인 물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의 오찬물. 하... 날이 더워서 약간 날카로워져 있던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그 오찬물을 두 세 잔 연거푸 마셔댔다.
된장과 제육볶음을 시켰다. 메뉴 3개는 배를 터지게 할 수도 있음을 소풍에서 배웠기에. 검은 철(?)판에 고이 담겨온 제육볶음은 양념이 온 테이블에 튈 정도로 지글지글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었고, 된장찌개 역시 보글보글보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모습으로 테이블 위에 놓였다. 두 메뉴 모두 양이 굉장히 많은 데다가 맛도 아주아주 좋았다. 그리고 제육볶음에는 계란국까지 딸려 나오는 센스! 우리는 쉴 틈 없이 순식간에 온 음식을 싹쓸이 해내었다. 하하하.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차례 하며 식당을 떠났다.
> 식당 경복궁의 내부 모습과 음식들. 오찬물 컵 사진이 없어졌다.
축제(Festival).
네팔 트레킹과 관련하여 전설적인 카페인 '네히트' 에서 아주 유명한 곳으로, 게스트하우스 겸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 사장님께서 한국어를 굉장히 잘 하셔서 한인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으로 예전부터 이름을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이 곳은 처음에는 딱히 갈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식당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들리게 되었고 우리는 식당만 이용하였다.
2층에는 야외석과 실내석이 있었는데, 첫 번째 방문 때 우리는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에 앉으니 깔끔하게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네팔리 청년이 서빙을 해주었다. 한국어도 곧잘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인들이 여럿 와서 식사를 하고 가기도 하였다. 역시 네팔 방문하는 한인들의 아지트인가...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김치찌개와 탕수육, 김치전을 시켰다. 찌개는 깊은 맛이 우러나지는 않았지만 재료가 듬뿍듬뿍 이었고, 김치전은 음... 반죽이 조금 두꺼운 편이었으며, 탕수육은 ... 일단 기대했던 한국식 달짝지근 끈적한 소스가 아닌 것 까진 좋았으나 고기가 고기가 ㅜㅜ 나중에 쨘~ 나타나신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사장님께서 "우리집 탕수육 별론데..."라고 하셨다. 다음엔 꼭 제육볶음을 먹어 보라는 말도 덧붙여 하셨다. ㅠㅜ 그래도 탕수육이 정말 먹고 싶었기에 그 욕구를 조금 달랠 수 있었다.
그래서 네팔리 친구를 데리고 두 번 째 방문 했을 때(다른 곳에 가려 하였으나 명절기간이어서 장기 휴업에 들어간 관계로 이 곳에 다시..) 닭볶음탕과 제육볶음과 된장을 시켰었는데 오, 굿, 서프라이즈, 역시 사장님이 자신있게 추천해준 이유가 있었던 거다!!
> 식당 축제에 첫 번째 방문 때 먹은 음식 들.
대장금(Dae Jang Geum)
이 곳은, 카페 '네히트' 에서 주막이라는 한식당을 추천한다는 글을 보고서 찾아다닌 곳이다. 몇 날 며칠 동안 타멜 거리를 샅샅이 뒤져도 주막이라는 한글 간판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는 대장금이라는 간판만 있을 뿐이었다. 상호명이 대장금으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흥.
무튼 위치는 타멜촉을 오른편에 둔 상태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편에 '네팔로' 라는 여행사와 함께 태극기 및 대장금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구글스트릿뷰를 보니 지금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 대장금이 있는 자리의 과거 모습.
무튼, 이 곳은 은근 입맛 까다롭고 나처럼 아무거나 맛있다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균이 여러 번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2층인가 3층이었던 것 같다. 좁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넓은 식당이 나오는데 반은 좌식(고기집처럼 마루가 있다!!) 반은 테이블 석이다. 역시 3시쯤 갔던 지라 손님은 우리 뿐. 이곳에서 우리는 또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는데, 바로 컵 표면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 내릴 만큼 차가운 오찬물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가!!! 땀 많은 균, 여러 잔 시원~하니 들이켰다.
게다가 또 놀라운 건, 테이블 위에 자그마한 가스버너가 올려져 있고, 밑반찬에 글쎄 양배추찜? 쌈?과 막장(된장?)과 파송송 마늘송송이 나온 게 아닌가. 하….. ㅜㅜ 어떻게 네팔에서 이걸 먹을 수가 있는지. 감사감사 무한 감사였다.
된장과 제육볶음을 시켰는데, 맛은 두말 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제육볶음은 다른 곳과 달리 기름에 섞인 양념이 전혀 흘러나오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깔끔하게 요리되어 나왔다. 추측컨대 다른 식당과는 제육볶음 용으로 쓰는 고기가 달랐던 듯하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푹 익혀서 부드러운 양배추에 고기 한 점, 된장?막장?을 곁들여 입에 넣으면 정말...그 어느 산해진미 부럽지 않았다.
식사를 다 하고 일어섰는데, 테이블에서 직원들과 카드를 치던 남자 네팔리 사장님께서 유창한 한국말로 "맛있었어요?" 라며 인사를 하셨다. 그 분 역시 축제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네팔로 와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식당 이름이 변경되었냐고 묻자 꽤 되었다고 하셨다. 네히트에서 주막을 추천해주신 분이 2014년도에 방문하셨다 하니 그 이후에 변경된 듯.
정말…. 네팔리 친구를 이 곳에 데려오지 못한 게 너무 아쉬울 만큼 만족스러웠다. 또 가고 싶다. 다음 방문 때까지 그 맛 그 퀄리티 그대로 유지되어 있기를…
> 현재(2016년 11월 기준) 골목 건물 입구에서 식당 대장금을 바라본 전경과 계단을 오르면 맞이하는 작은 간판.
> 식당 대장금만의 차별성이 돋보이는 요소들.
> 식당 대장금의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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