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 14일
네팔에서 한 달을 보내고, 카트만두에서 방콕으로 넘어왔다.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방콕 3일 째에 쓰는 글.
태국 방콕의 로프트 인(Loft Inn)에서 3일 째 머물고 있다. 월요일 아침 그러니까 10일에 먼지 많고 차 많고 혼란스러운 카트만두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인도 델리 공항을 거쳐 방콕에 밤 8시에 도착했다.
방콕 숙소. 로프트인( Loft Inn).
비행기 타기 전 새벽, 급하게 찾은 숙소. 각종 사이트에서 평이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아서 결정. 이 곳은 3박을 하면 공항 픽업 서비스가 되는데, 아고다에서 예약을 진행하면서 픽업요청 메모를 남겼다. 방콕 시간으로 새벽 3시쯤 예약이 들어갔을 텐데 2-3시간 안에 답장이 왔고 컨펌을 받았다. 브라보! (컨펌 메일이 늦게 올까봐 초조해서 잠을 못잤는데 보람이 있었다).
스완나폼 공항 2층 #3 게이트에서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내 이름이 적힌 A4지를 든 직원을 만나, 차를 타고 한 참 만에 숙소 도착. 리셉션에서 작원분이 방콕지도를 꺼내서 3일에 걸쳐 갈 만한 곳들을 자세히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리고 다음날 조식 메뉴를 정하라며 사진이 첨부된 아---주 커다란 메뉴판도 보여준다. 친절의 끝판왕.
다만, 이 숙소에서 시내에 나가기 위해서는 웡위안야이 지하철 역까지 5-10분 정도 걸어야 하고(지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지루할 정도로 길다) 중심가까지 30분 정도 걸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
숙소 근처, 나만의 행복식당
첫 날 (월요일) 밤 숙소 근처에 있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방콕에, 아니 이 동네에 푹 빠져들었다. 길거리에 노점인 듯 아닌 듯한 가게인데, 주방(?)섹션에서는 주방장 아저씨가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다. 저렴한 스테이크, 독일 소시지, 학창시절 급식에 나올 법한 맛의 스파게티 등. 며 칠 동안 온 메뉴를 다 먹었는데, 하나같이 다 맛있다. 여기서 밥을 먹을 때마다 정말 행복 그 자체의 웃음이 절로 나와 행복식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방콕 애플서비스센터(맥북 수리를 위한) 방문
화요일은 조식을 늦게 먹고 카트만두에서 고장난 맥북을 들고 시내로 나갔다. Siam. 굉장히 고급스러운 호텔들과 거대한 쇼핑센터가 즐비한데다가 왕복 도로가 꽉 막혀 있고 육상 통로가 잘 이어져 있는 시내다. 네팔 시골에 있다가 초대형(?) 시내로 나오니 둘 다 정신이 없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었다. 무튼 우여곡절끝에, 센트럴월드(central world)라는 복합적인 초대형 쇼핑몰 내에서 한참을 찾아 헤매다 2층에 있는 iStudio(애플샵, 전시와 판매를 하는 곳, 나같이 잘못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지 감사하게도 서비스 센터의 위치가 찍힌 종이를 주었다)을 거쳐 I Serve(방콕 애플 서비스 센터)에 도착했다.
사실 여기까지 가면서 균과 감정이 상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나는 순차적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한다면 균은 경험적으로, 무작정 일단 못먹어도 고- 의 방식이다. 특히 문제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니 더더욱 무대뽀로 나서는데… 가끔 그럴 때면 정말 답답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특히 사람 많고 복잡하고 시스템에 따라야 하는 대도시에서 균이 쉽게 지치고 재미없어 하는 게 팍팍 느껴져서 다시 산속으로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휴, 아무튼, 서비스 센터에서는 우선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대기표 시스템이 굉장히 잘 되어 있었는데, 패드에서 폰/맥북/ 등 서비스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대기번호가 찍힌 종이가 튀어나온다. 벽에 커다란 전광판에는 대기인, 예상 대기 시간, 처리된 대기번호가 제시되고, 내 순서가 되면 “Attention Plz” 라며 대기번호와 데스크 번호를 알려 준다.
“I tried to re-install my OS, but I failed.” 라고 대충 이야기 하니 “아아” 하며 잘 처리해준다. 직원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주었는데 그의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워 바보처럼 고개를 자주 갸우뚱 했다. 아무튼,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하드웨어 문제인지 점검이 필요하고, 만약 최악의 경우 10일 정도의 수리 기간이 필요하며, 간단한 문제일 경우 1600바트 정도의 수리비가 나올테고, 수리 못하면 서비스차지는 0원일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10-20분 정도 기다린 후 다행히 오늘 수리가 가능하니 2시간 후에 오란 말을 들었다.
심카드 구입
배가 고파서 그 건물 내 3층 식당가에서 대충 점심을 떼웠다. 치킨/돼지가 들어간 누들습과 팟타야. 굿. 노트북을 찾고, 밖으로 나와서 씨암플라자로 가는데 균은 땀을 뻘뻘 흘리고, 왜 어제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는 심카드가 안됐냐며 중얼중얼 징징거려서, 어서 빨리 심카드를 끼워줘야 너도나도편해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도 무작정 계속 번화가로 걸어 갔는데 모바일 샵이나 편의점은 보이지 않고, 균의 표정은 더 굳어지고, 나서서 뭘 하려 하지 않고 뒤에서 나를 따라오기만 하는 게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짜증이 났다. 아니 자기가 필요하면 좀 적극적으로 해보면 안되나. 하…. 세븐일레븐을 지도에서 찾아 걸어가는 그 시간 동안 화가 막 났다가 한숨이 막 났다가 가다가 화가 나서 발걸음을 멈추고 균을 쏘아봤다가 뭐 그러길 반복했다. 불확실성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에 발생하는 불안과 투사로 인한 분노감이 폭발한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겨우 편의점을 찾아 심카드를 끼웠다. 7일짜리 4G는 1.5기가 제공, 3G는 무제한인 심카드(그런데 7일이 지나서도 한참동안이나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3G가 무제한이 아니었나? 아무튼 7일이 지나도 제공된 데이터를 다 써야 정지되는 듯 했다). 나는 자동으로 작동이 되었으나 균은 갑자기 태국어가 뜨면서 네트워크를 설정하라는 화면에서 아무 것도 작동이 안되는 상황 발생. 당황해하고 있는데 너무도 감사하게도 직원이 와서 자기 폰으로 핫스판연결하고 문제를 해결해줌 ㅜㅜ 컵쿤카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공항에서 픽업 직원이 기다릴까봐 걱정되어 안했더니 이런 불상사가……)
쇼핑을 더 하자니 둘다 너무 심리적 신체적으로 지쳐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 다시 찾아간 그 행복식당에서 하루의 모든 감정을 정화시키고 행복하게 숙소로 가서 잠.
그리고 3일째인 오늘. 집 밖에 나가기 싫어서 나는 가이드북으로 태국 공부, 균은 한 달간 밀린 가계부 작성 하기로 했다. 점심은 이 근처 시장 인근에서 볶음밥, 꼬지, 바나나쥬스로 떼우고, 시장을 구경하고, 쉬다가, 저녁 먹으러 행복식당에 가서 또 먹고, 마사지를 받았다. 숙소에서 추천해준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 시간이 늦었기에 우리까지는 안될거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다른 마사지 샵에서 foot massage를 1시간에 150밧에 받고 만족스럽게 귀가. 균은 잠들었다.
10월 13일 목요일
도저히 복잡한 시내로 나가기가 싫어서 왕궁, 템플 투어를 결정. 유명한 왓 포 사원에서 마사지도 받고, 여느 관광객들 처럼 관광용 사진도 많이 찍었다. 왕궁으로 걸어가면서 구경할까 하다가 너무 덥고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이 날이었던가, 국왕이 서거하고 출입이 통제되었다.
내일, 아유타야로 넘어간다.
- 여행. 미리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간다면, 시간과 돈을 날리게 될 소지가 매우 크다. 이 숙소는 가격대비 시설이 좋고, 매우 친절하고, 인근에 만족스럽고 부담 적은 식사와 간식거리가 즐비하며 마사지샵도 훌륭해서 굳이 여기저기를 찾아 구경 다니지 않아도 마치 내 동네처럼 편안하게 여러 날 머무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으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 나는 장기여행에 대해 아주 커다란 환상과 착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림, 명상, 운동, 매일의 성실함 등을 기대했는데, 사실 내 행동은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해진 것은 정확히 따르지만 그 이외에는 킬링타임이 반복된다. 장기여행자는 여행이 곧 일상이기 마련이다. 일상을 관리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런데 그 관리란 것은 결국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렷다.
- 균과 심리적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 나는 아마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 대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유연하고 부드러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 상황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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