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네팔] 반쪽짜리 안나푸르나 써킷 트렉(Annapurna circuit trek)

담연. 2016. 11. 14. 02:38

 


장기 여행의 첫 시발점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목표로 한 것은 왜일까. 거창한 의미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등산을 좋아하고(자주는 다니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여행을 시작하는 그 때 심신의 에너지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반은 틀린 판단이다. 체력이 거지였으니까). 또한,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며(매크로나 붙여넣기 오류 아님) 아무런 의미도 의욕도 의지도 없던 나의 일상에서 전적으로(totally!)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일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생산적이고도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이전의 무력한 삶과 여행 동안 이어질 의욕적인 삶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기 여행을 떠남에도 불구하고 여행 전 준비를 한 것은 한 달 짜리 트레킹 계획 뿐이었다. 준비물, 일정, 교통편, 현지 상황 등 트레킹 관련 정보는 거의 전적으로 카페 '네히트' 에서 얻었다. 여러 개의 컬러풀한 지도를 큼지막하게 프린트하여 출발점과 도착점, 그 구간의 '온갖' 정보에 대해서 아주 꼼꼼하게 기록한 다음 엑셀파일로 정리 하였다. 히말라야를 다녀오는 다들, 아니 적어도 네히트에 성공적인 후기를 완주기를 올리는 그들처럼 나 역시 '노포터 노가이드(no porter, no guide)'로 나만의 힘으로 트레킹을 온전하게 정말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단지 트레킹 만이 아니라 이후의 여행도 생각해야 했기에 작은 짐을 하나 챙기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트레킹은 네팔의 우기가 끝날랑 말랑 하는 9월 말경 시작하여 10월 중순에 끝이 날텐데, 핫팩이나 경량 패딩 등이 과연 필요 할지, 약은 얼마나 챙겨야 할지, 기부할 물품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여러 네팔고수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최종적으로 개인적으로는 들고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내렸다), 여벌은 얼마나 필요할지 등등. 수많은 질문과 답변과 반박들이 머릿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트레킹.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4-5시간 걸릴 거리를 6-7시간에 걸쳐 올라갔다. 어느 마을에서 묵을 거라고 계획했던 대로 움직이기는 했다. 오솔길, 숲길, 이끼가 잔뜩 끼인 돌길, 오르락 내리락, 자갈길, 물길, 낙석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길, 차가 다니는 꼬불꼬불 길, 찻길이 아닌 샛길, 비탈진 길, 낭떠러지 길, 단 하나의 나무도 볼 수 없는 자갈과 흙과 커다란 바위만 보이는 길, 등등 아주 다양한 아름다운 풍경의 코스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얀 설산과 함께 하며 걸었고 숙소 창문에서도 설산을 한 가득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네팔리들은 처음에는 낯설어 하면서도 결국 하나같이 친절했고 따뜻하게 웃어 주었다. 간간이 만나는 한인 트레커들과는 반가움이 들떠 수다떨며 파이팅을 외쳤고 외국인 트레커들은 다들 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 곳까지 온 것인지를 묻기에 바빴다. 


난이도(?). 쉬리카르카에서 틸리초 호수를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마낭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산 좀 타고 체력 좀 되는 사람이라면 쉬운데?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의 난이도라고 할까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리하다가 뒤늦게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속도의 문제인데, 많은 네팔리들이 '천천히' 가라고 당부했다. 나는 '너무너무 천천히' 가고 있다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가라고 재차 당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베시사하르에서부터 게르무까지 무겁고 커다란 가방을 맨 채 단숨에 올라와서는 too easy를 외쳤던 독일인 남자애도 결국 쉬리카르카에서 만났었다(물론 그 사이에 아이스레이크도 다녀왔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빨리 그리고 많이 움직이다 보면 결국 몸에 무리가 오기 마련이고 예상치 못한 지체가 있을 수 있다. 마음과 계획 상의 여유가 필요.


날씨. 9월 중하순. 우기의 끝무렵. 첫 날부터 트레킹하는 내도록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해가 진 이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새벽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다가 산이 무너질 것같이 천둥번개가 심하게 쳐대었는데,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다행히도 트레킹 중에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는 단 하루 있었던 것 같다. 그날도 금방 그쳤기에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아무튼 숙소에 빨리 도착해서 해가 있을 때 빨래를 널어 말리는 것이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숙소. 대부분의 숙소들은 과거 ‘롯지(lodge)’라고 간판을 내걸었던 반면 요즘은 거의 전부 ‘호텔(hotel)’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마을 구석진 혹은 고도가 높은 마을로 갈수록 간간이 ‘lodge’  간판이 걸린 숙소들이 눈에 띄었는데외관만 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허름하고 오래된 시골집 같은 인상이었다


마낭 이전까지는 모든 숙소가 저녁을 먹는 조건으로 방비가 무료였고 공짜로 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마낭 이후에는 200, 300루피 정도의 방값이 들었고 틸리초 베이스캠프에서는 와이파이 비용도 내야 했는데 주인아저씨랑 방비 협상 때 무료로 사용하기로 했었다(그 산 깊숙한 고지대까지 전기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으므로 돈을 내더라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숙소를 운영한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숙소가 많았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보았지만, 숙소를 고를 때에는 무척 중요한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인사이드 토일렛' '핫샤워(태양열을 이용한 핫샤워가 아닌 가솔린이나 전기로 돌아가는 순간온수기!)' '써니(의외로 해가 들지 않고 침구가 눅눅한 곳이 많다!!)' '프리 와이파이(고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 와이파이 초기 설치(?)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간혹 와이파이 사용 비용을 내길 원하는 주인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무료이기는 하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트레킹을 갔는데.. 사실 나로서는 화장실과 샤워실 문제 자체로 매우 마음이 불편했고, 차후에 트레킹을 다시 가지 않게 될 경우 하나의 큰 원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일단 현대식 시설이 아닌 것에 적응하기까지가 오래 걸렸다. 게다가 양변기가 잘 없었고(우리가 숙소를 잘 못 골른 탓인지.....), 인사이드 토일렛도 잘 없었고, 공용일 경우 벌레도 많았고 시설도 열악하고 하수구도 많이 막히고 .... ㅠㅠ.......그렇다.



다시 일정 이야기로 돌아가서, 원래의 계획은 한 달 동안 써킷+푼힐+ABC를 완주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일정을 넉넉하게 잡기도 했거니와 여차하면 ABC는 다음에 가도 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마음에 여유는 충분하였으나, 체력이 체력이... 여행을 떠나기 전 몇 개월 가량 정말 운동이라고는 가끔 걷는 것 빼고는 일절 하지 않았었기에 체력이 바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점차 떨어지는 식욕과 그에 반해 점점 커져만 가는 무기력증, 고산증에 대한 불안감, 설사, 두통, 2000m 이상 부터 밀려 오는 간밤의 불면증 등도 체력을 더욱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나는 완주하지 못하고 써킷 트렉의 중간 지점(?)인 마낭에서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던 나의 계획. 

애매한 구간은 하루 이틀 정도의 여유를 주었더니 한 28일 정도로 계획이 섰다.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예상 소요일 : 경로

1일: 카트만두에서 팀스와 퍼밋  

1일: 카트만두에서 약 170km 떨어진 베시사하르(Besisahar)를 거쳐 불불레(Bhulbhule)로 이동

8일: 불불레에서부터 시작하여 게르무(Ghermu), 딸(Taal), 티망마을(Temang), 챠메(Chame), 어퍼피상(Upper Pisang), 뭉지(Mungji)에서 차례로 숙박한 뒤 아이스호수(Ice lake)에 다녀오고, 다음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지점인 마낭(Manang)에서 고소 적응일.

3일: 쉬리카르카(Shree Kharka)와 틸리쵸 베이스 캠프(Tilicho Base Camp)를 묵고, 틸리쵸호수(Tilicho lake, 4900m)후 다시 쉬리카르카

4일: 쉬리카르카에서 캉사르(Khangsar)를 거쳐 레다르(Ledar), 토롱 페디(Thorong  phedi)나 토롱 하이캠프(Thorong high camp)에서 묵은 뒤, 써킷 트렉에서 가장 고지점인 해발고도 5416m의 고개 토롱라(Thorong la)를 지나 하산길 동안 묵티낫(Muktinath), 까끄베니(Kaagbeni)를 거쳐 좀솜(Jomsom).

3일: 좀솜에서 마르파(Marpha)로 가서 사과주를 맛보고 짚차를 타고서 따또파니(Tatopani), 고레파니(Ghorapani) 숙박 후 푼힐(PunHill) 전망대

6-7일: 타다파니(Tadapani), 촘롱(Chomrong), 밤부(Bamboo), 데우랄리(Deurali), ABC를 거쳐 시누와로 하산하는 국민코스 ABC 코스 합류.

이렇게 약간의 여유를 더해 4주+/-a 의 일정을 꿈꿨다. 용감하게도 말이다.


실제로는?

앞서 언급하였듯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구간별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고(4,5시간 코스라면 7시간 걸렸음) 하루 이틀 휴식 시간을 가진 것들 빼면 얼추 계획한 일정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전체 일정의 절반만 다녀왔다. 마낭에서 짚차를 타고 올랐던 그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내려온 것이다. 


초반 게르무에서 도저히 노포터로는 힘들겠다 싶어 숙소 주인장을 통해 포터를 불렀고, 이후 설사와 식욕저하, 기력저하 등이 시작되었으며, 2천미터를 넘어서는 다나규에서 설사, 두통, 불면, 극도의 식욕 및 기력 저하로 휴식일을 가져야만 했다. 이후 설상가상으로 생리가 시작되었다. 마낭, 즉 3천미터를 넘는 지점으로 보통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이틀 쉬어가는 그 곳에서 이틀 쉬었고, 겨우 힘을 내어 기어 기어 기어 틸리초 베이스 캠프까지 갔으나, 결국... 새벽같이 틸리초 호수로 향하던 중 균과의 분열로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마낭으로 내려갔다. 마낭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고 스스로를 위로하자,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고 몸과 마음이 편하고 절로 웃음도 나고 그랬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 맛있는 크림소스새우요리와 맘스터치버거, 유명한 만두 집의 찐만두와 군만두, 엄마표 요리들을 실컷 먹고 다시 여행을 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으니까. 


만약 다시 간다면, 

장기 여행의 끝 지점은 무조건 다시 네팔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써킷 트렉을 간다면, 무조건 마낭이나 적어도 챠메 까지는 짚차를 타고 오를 생각이다. 그런 다음 틸리초 호수를 다녀오고, 이후 못다한 여정을 마무리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4-5일 치의 시간과 체력을 비축하는 셈이니까..........


내가 움직인 경로와 에피소드........

Day 1. 트레킹 시작점으로의 기나긴 이동.

카트만두 --(로컬버스)--> 베시사하르 --(미니버스)--> 불불레 --(도보)--> 나디 


카투만두에서 베시사하르. 타멜에서 택시로 300루피에 흥정하공가부 버스 터미널(Ghongabu bus station)로 갔다. 구글지도 상 New Bus Park Ticket Counter 으로 검색하면 된다. 당일 아침 6시반쯤 표를 끊고, 7시반쯤 출발 하여 한 7-8시간 걸린 듯. 로컬버스, 1인당 약 350루피 정도 했던 것 같다. 로컬버스는 에어컨 없이 창문열고 달리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매우 낡디 낡은, 곧 타이어 펑크나면 어쩌나 싶은 그런 큰 버스였다. 


덜컹덜컹. 가득한 먼지와 쉴 틈 없는 경적소리에 코와 귀를 틀어 막고 싶은 카트만두 시내를 거쳐, 오토바이 휘황찬란하고 커다란 트럭이 사이좋게 달리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추월하기를 반복하는 나름대로의 고속도로를 지나, 휴게소를 지나, 아주 큰 도시(?)인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여정. 


베시사하르에서 불불레. 그 곳에서 내리면 짚차나 버스 흥정하는 아저씨들이 많은데, 대충 아무에게나 '불불레~' 외치면 표 끊는 곳으로 데리고 가준다(바로 앞에 있음). 이 버스도 웃긴 것이... 마을버스 크기에 천장 손잡이도 제대로 없는 낡고 낡은 버스인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앉아 있어도 천장에 머리를 박거나 허리가 비틀어지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안기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 가다 보면 애기도 타고 할머니도 타고 음메에에 염소도 타는 신기한 버스. 가다가 결국 고장이 나서 한 시간 가량 정차하였고 운전기사랑 차장(?) 같은 아저씨가 손수 열심히 고쳐 다시 출발하였다. 


그러는 동안 트레킹을 온 각국의 트레커들과 짧게 짧게 일정을 공유하는데, 천차만별이다. 뭐 얼핏 보기에 다들 같은 길을 같은 일정으로 가는 듯했지만, 결국 초반에 한 두 명 다시 마주친 것 빼고 이후로 전혀 만나지 못했다. 


불불레에서 나디. 불불레에서 하차하여, 약간 머뭇거리는 사이 윗동네인 나디(Ngadi)에서 게하를 운영한다며 자신을 소개하는 하리 아저씨를 만나, 함께 도보로 30분 가량 걸어 나디의 하리 아저씨 집으로 이동 후 짐을 풀었다. 베시사하르부터 나디 약간 뒷동네까지는 강을 틀어 막고 댐 건설 공사가 한창이라 길이 지저분하고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공사에 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데다가 망가지는 히말라야를 보며 걸어야 해서 마음만 아픈 구간이다. 


나디 숙소. 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다. 동네는 나디이지만 주변에 가까운 이웃집이 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그 곳에 덩그러니 있는 하리 아저씨네 집. 주인장 아저씨가 예쁘게 정원을 꾸며놓긴 하였으나, 이름도 없는... 나무 기둥에 철판을 엉기성기 대충 얹어 만든 간이 공간 같은 ... 주인장 아주머니가 친절히 가져다준 밀크티와 설탕에 잔개미들이 드글드글 하는... 힘들게 걸어 갔는데 나에게 커다란 절망감과 암담함을 선사해준 그런 곳이었다. 이후 이 곳보다 더 최악인 숙소는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는 후문이 ㅜㅜ 전기가 다 나가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처음 먹는 달밧에는 개미가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온전히 푸세식인 데다가 삐딱한 철문도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 화장실. 샤워는 커녕.. 산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인지 지하수인지로 연결된 호스로 쉴 새 없이 흘러나는 물로 대충 씻어야 했던 그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연코 최고였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문자 그대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이 마치 크리스탈을 깨어 부셔서 하늘에 흩뿌려 놓은 것 같이 반짝이던 '별' 이다. 충북 저어기 시골 마을에서도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감탄하고 잠든 적이 있었지만, 가히 나디의 별은 세계 최강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히말라야 산 속 어디서라도 그러한 별은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네팔의 첫 별이었기에 더 감동이었던 듯하고, 실제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서도 별빛 달빛 이외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더 빛이 났을지도. 


그 황홀했던 별빛으로 마음을 달래며, 널빤지로 대충 틀을 잡고 천을 씌우고 얇은 매트를 깔아 둔 트윈룸에 들어가 손전등을 켜고서 코인티슈에 물을 약간씩 적셔 낮에 흘린 땀을 각자 닦아 내야만 했던.... 그 긴긴 밤... 침낭에 조금의 틈도 주기 싫어 부동의 자세로 자야만 했던 그 밤.... 하하. 


Day 2. 나디 --> 게르무(Ghermu, 해발고도 1145m) :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개르무에서 2박했다고 함. ㅋㅋ)


호기롭게 'no porter no guide'로 시작했다. 가방은 천근만근이지만 마음은 가벼...웁지 않았다 전혀. 올라 가는 길은 참 예뻤다. 중간 마을(아마도 바훈단다)에 들러 뭉툭하면서 아주 굵게 생긴 바나나를 사먹었는데 새콤달콤 신기한 맛이었다. 특히 그 마을까지 올라가는 길이... 우리는 지도 상으로 나 있는 큰 길을 따라 돌고 돌아 올라갔는데, 포터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샛길이 있었다. 가파르지만 더 짧은 그 길. 이러나 저러나 나는 힘들었으리라.


작은 아주 작은 마을들을 거치기도 하는데, 전통방식 그대로 실을 짜는 모습, 나무를 하는 모습,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집을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을 처음 만났던지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관찰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낙석 구간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바훈단다? 인지.. 바나나를 사먹은 마을까지 한참 올라갔다가, 또 가파르게 위험하고 좁은 길을 한 참 내려가야했다. 그 마을을 지나 가파르게 내려가야 하는 길 위에서 바라보는 뷰가 정말 정말 정말 멋졌다. 우리는 한참 우와...하며 넉놓고 풍경을 보았다. 저 멀리 높게 솟은 비탈진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러 집들,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는 저 높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울창한 숲,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경관. 그래, 우리 이런거 보려고 여기까지 온거지, 정말 잘 왔다, 며 서로를 다독였던 그 곳. 


게르무 초입에서 너무 힘들어서... 크리스탈 호텔이라는 숙소에 묵었다. 화장실과 욕실이 공용이었지만 시설은 나쁘지 않았고 음식도 맛이 괜찮았다.


Day 3. 게르무 --> 딸(Taal, 1700m)


아침, 길을 떠나기 전, 숙소 매니저(?)에게 부탁하여 포터를 불러달라고 했다. 이 약장수같은 사람이 나에게 포터에 대해 극찬과 화려한 경력을 늘어 놓았는데... 아무튼 우리가 만난 포터 멍거르는 20살 초반에 나보다 키가 작고 깡마른 청년이었다. 그는 바훈단다에서 일용직 일을 하다가 포터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한시간 만에 달려 게르무로 올라왔던 것이다. 대체 뭐가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백팩 하나에 검은 장우산을 손에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나타난 멍거르.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데다가 우리를 매우 경계하는 눈빛으로(나중에는 뭐...ㅋㅋ) 낯을 가려서 신경이 쓰였는데.. 내 짐을 들고 너무도 여유롭게 걸어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절벽에 다이너마이트로 겨우 길을 낸 길을 지나가게 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더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오갈 수 있다면.... 그 정도야.... 하는 마음도 약간 들었다. 


멍거르를 기다리느라 12시 가까이에 출발을 하였기에, 딸에는 어둑어둑 해질무렵 도착했다. 딸은 댐 공사가 완성되면 물에 잠길 운명에 처해 있는, 예쁜 마을이다. 해발고도 1300m 정도 되는데 넓은 평지에 강이 유유히 흐르고 양 옆으로 높게 솟은 산에서 폭포들이 멋있게 흘러 내리는 아름다운 마을. 입구에서부터 감탄감탄 또 감탄하며 들어선 이 마을. 그립다. 


Day 4. 딸 -->  다나규(Danagyu, 2130m)


기억이 잘... 그냥 힘들었다. 메모를 하지 않은 게 정말 아쉽군. 원래 계획대로라면 더 지나서 티망마을까지 갔어야 했는데, 몸이 정말 좋지 않았기에, 딸 다음에 마주친 마을에서 바로 쉬었던 것 같다. 빨래도 할 것을 핑계로. 


Day 5. 휴식


다나규에서 나의 컨디션이 정말 좋지 못했던 데다가 빨래까지 덜 말라서 하루 쉬기로 결정. 지금 생각해보면 다나규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서 해가 드는 시간이 짧은 동네였다. 


Day 6. 다나규 ---> 챠메(Chame, 2670m)


메모도 기억도 없다. --- 아니다, 기억 난다.

여차저차 챠메에 도착. 챠메는 꽤 큰 동네였는데, 롯지가 밀집한 지역 약간 위쪽으로는 큰 학교도 있었다. 우린 한국에서 오래 일하다 온 한국인 아줌마가 사장인 롯지에 묵었는데, 한국말을 정말 잘 하셨다. 매우 수줍어하며 주방에서 일을 돕고 있던 큰 딸도 생각난다. 한국어 공부 중이라던데... 무튼 그 분의 음식 솜씨 짱이었다. 야크스프가 참 맛났고, 옥수수도 구워서 떼먹고 그랬다. 두통이 심해서, 고산병인가 싶어,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동네 약방에서 파란색 알이 큰 약도 사먹었다. 동네 구경하다가, 학교에 가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교장실로 초대받아 교장선생님과 대화도 나누었다. 난 영어가 짧아서 열심히 웃어주고 들어주고 그러다 기분 좋게 바이바이 했다. 숙소는 2-3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우린 2층에 트윈베드 방이었다. 목조건물.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는데 샤워장에 물이 심각하게 잘안빠져서, 서양처자가 수건만 두르고 튀어 나와 헬프미를 외치기도 했다. 챠메는 뭔가 복작복작하니 busy한 느낌이었고, 따뜻했고, 반가웠고, 그랬다.


 

Day 7. 챠메 --> 로어 피상(Lower Pisang)


어퍼피상으로 가려고 했으나 길이 험하고 힘들다는 말에, 저질체력으로 곧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나는 눈물을 머금고 로어피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길이 새로 난 길인지, 평지 길을, 탁 트인 평지 길을, 차가 다니는 넓은 그런 길을, 끝도 없이 걸어야 했다. 다만 사람이 거의 없었던 데다가 멍거르와 균과도 멀찍이 떨어져 혼자 걷기도 하였는데, 하,,,, 그 넓은, 그러니까 360도 사방을 둘러 보아도 설산, 구름, 하늘, 나지막한 나무들, 길, 그리고 나 말고는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 느꼈던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Day 8. 로어 피상 --> 브라가(Bhraga, 3360m)


브라가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해발 3천이 넘는 그 곳에 탁 펼쳐진 평지, 유유히 흐르는 강물, 한 쪽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곰파(사원). 그 느낌이 매----우 평화롭고, 평화롭고, 평화롭기 그지 없는 그런 곳. 마을 입구에 꽤 끄게 지어진 야크 호텔이었던가 그 곳에서 머물렀다. 기운이 좋은 곳. 


Day 9. 브라가 --> 마낭(Manang, 3540m)


매우 지척이었다. 브라가에서 저어기 마낭의 커다란 마을이 보인다. 20분 정도 채 걷지 않아 마낭에 도착했고, 고소적응을 핑계로 이 틀 머물렀다. 많은 트레커들이 우리처럼 하루 이틀 더 묵고 지나갔다. 이 곳에서는 쿠커가 포함된 한국인 아저씨 트레킹팀을 만났는데, 그들 중 아주 감사한 한 분께서 고추장이며 깻잎이며 온갖 두통약이며를 챙겨주셨다. 그 옆에서 우리는 죽 아닌 슾과 쌀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들은 백숙을 끓여 드심. 우리가 가려던 길이 아닌 좀솜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지름길(실종사고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길)로 갈 계획이라고 하셨다. 잘 지나 가셨는지 어쩐지 소식을 몰라 궁금하다. 


마낭은 히말라야에서 아~주 큰 마을이다. 영화관도 있는데, 간판만 보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관이라기 보다는 옛 영화들을 틀어주는 DVD방? 정도의 느낌이었다. 베이커리도 있고, 마을도 상당히 컸다. 새로지어진 호텔들이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야크 고기도 먹고 야크 치즈도 먹었다. 치즈는 살짝 비렸지만 그럭저럭 맛이 있었다. 


참, 나디 이후로 처음으로 숙박비를 지불한 곳이다. 밤에 상당히 추웠다. 해가 지기 전 패딩잠바를 꺼내 입어야 했다(참, 나의 패딩은 여기에서 구매했다. 2만원 가량 짝퉁 노페).


Day 10. 마낭 --> 쉬리카르카(Shree Kharka, 4076m) 


본격적으로, 4900m에 위치한 틸리초호수를 보러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고도가 높아 그런지 숨이 쉽게 가빠졌고 더욱더 쉽게 지쳤다.  놀라웠던 것은 공식적으로는 마낭까지 밖에 지프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더 넘어서에 포크레인과 커다란 트럭이 와 있었다.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위에 새로운 숙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2016년 9월까지는 쉬리카르카에 Himalayan Guest house와 Tilicho Peak Hotel, 단 두 곳의 숙소만 있었고, 숙박비도 꽤 높았던 것 같다(그래봤자 1만원 선이었나. 가물가물). 


우리는 히말라얀 게하에 묵었는데, 매우 추웠다. 조금도 움직이기 싫을 만큼 추웠다. 우리 옆 싱가포르에서 온 두 남성과 그의 가이드겸 포터는 약을 했는지 지나치게 떠들고 웃고 난리를 쳤다. 주방에는 키도 크고 말끔하게 생겨서 비교적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젊은 네팔리가 있었는데, 우리는 주방의 화롯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과 네팔의 현주소를 포함하여......  뭐 여러가지. 그는 컬리지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하고 있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후에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가이드겸 포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가 트레킹을 시작한 지점 근처 베시사하르라는 꽤 큰 도시에 살고 있는데 이 곳까지 알바를 하러 온 것이었다. 자신은 많은 요리를 할 줄 알고, 영어도 가능하며, 네팔리답게 포터 및 가이드도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 뭐든 크게 될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 멍거르랑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멍거르는 맨날 고된 일을 하고 담배도 많이 피고 술도 많이 마셔서 나이에 비해 얼굴이 많이 삭았다며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흠칫했다. 


또 흥미로운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체구가 작지만 당당함과 굉장한 에너지를 풍기는 젊은 네팔리 여성. 그 식당에 있던 모든 이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데다가, 우리에게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걸어왔으며, 영어가 여태 만난 네팔리 중 가장 유창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당일 아침 틸리초 호수에 갔다가 쉬리카르카가지 내려온 상태. 그렇게 아름다운 호수는 처음 봤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만 니가 직접 가서 느끼라며, 눈을 반짝이던 그녀. 내가 에너지만 조금 더 있었어도 친구했었으면 참 좋았을 그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강했다. 심지어 그 작은 체구에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은 스트롱 네팔리 였던 거다. 와우.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이 내게는 그저... 안타깝게도 피곤한 것들이었던 지라,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방에 처박혀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해야 했으니까. 


Day 11. 쉬리카르카 --> 틸리초 베이스 캠프(4150m)


이 길에는, 모래, 자갈, 암석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지나야 하는 구간들이었다.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 높은 곳에서 자갈이며 돌들이 마구 굴러 떨어지는 데다가 조금만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저ㅡ기 끝도 없는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좁은 길, 커다란 바위를 넘어야 하는 길 등 위험한 구간이 많았다. 이색적인 풍경이기도 했다. 모든 게 매말라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힘들었다. 걸을 만은 했다.


베캠에서 주인장은 꽤 돈이 많아 보이는 뚱뚱한 체구의 아저씨였는데, 이리저리 이야기 하다가 방값 0원으로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올레. 


Day 12. 틸리초 베캠 --> 틸리초 호수 가던 중 컴백 후 마낭 


문제의 그 곳. 오후가 되면 강한 맞바람을 뚫고 하산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 반드시 호수에 다녀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일등으로 출발했다. 동이 터오르기 전,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 헤드랜턴까지 끼고. 하지만 나는 계속 계속 후발 주자들에게 추월 당했고... 열 발자국도 못 가 멈춰서기를 반복하였다. 그런 나를 보던 균이, 무척이나 답답했던지, 재촉(이라 쓰고 폭발이라 받아들이는)을 하기 시작했다. 꽤 다그쳤다. 나도 폭발했다. 한 시간 가량 길 위에서 멍하니 있다가 다투기를 반복,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뒤늦게 안 사실 이지만 이 때 균은 나에게 처음으로 실망을 크게 했다고 한다. 균의 말대로, 객관적으로 나는 오전 내에 다녀오기 힘든 상태였다. 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을 했다. 멍거르가 적잖이 놀란 눈치.


베캠으로 돌아가니, 홀은 텅비어 있었다. 나는 아무 곳에 벌러덩 누워 우울, 좌절, 절망의 기운을 내뿜으며 잠시 잤다. 주인장이 다가와 왜 다시 돌아왔느냐, 머리가 아팠느냐, 그렇다면 잘 돌아왔다,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당시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 균이 하루 더 쉬었다가 내일 다시 도전하자 했지만, 나는 깔끔하게 내려가겠노라 했다. 그 길로 우리는 마낭까지 되돌아갔다. 


웃긴 건, 마낭으로 가는 그 길도 매우 힘들었는데, 우리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내려왔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 줄줄줄 나왔다. 그래, 돌아가서 다 먹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자. 난 지금 너무 집에 가고 싶어. 깨끗한 곳, 아늑한 곳, 따뜻한 곳, 포근한 곳이 그립단 말이야, 싶은 심정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에서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 놓은 마냥, 홀가분했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 


Day 13. 마낭 휴식


마낭으로 돌아갔다. 원래 묵었던 숙소에 묵었는데, 주인장이 놀래했다. 뭐 어쩌겠어 난 되돌아 왔는걸. 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난 돌아갈 거니까!! 다음날 새벽에 베시사하르로 가는 지프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자리에 누웠다. 그보다 마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Day 14. 마낭 --> 짚차를 타고 올랐던 글 그대로 베시사하르까지 이동.


이 짚차는, 정말 대박이다. 마낭에서 꼬박 9시간 넘게 달려 내려와야 했다. 2주에 걸쳐 올라간 그 힘든 길을 하루만에 내려간다는 게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는데, 우리가 올라왔던 길 반대편 산에서 그 길을 바라보며 내려가다 보니, 하루하루 보낸 시간들이 상기되며 꽤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진짜 말로는 그저 절벽에 나 있는 비포장도로를 구비구비 지나가야 한다고 정도 밖에 표현이 안되는 그런 말도 안되는 길이었다는 점.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무튼 마낭에서부터 함께 탑승한 마낭주민들(ㅡ할머니, 아저씨, 애기엄마,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가씨, 기사 아저씨)과 우리는 중간중간 과일도 사먹고 간식도 사먹고 밥도 함께 먹고 뭐 등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보면, 나는 트레킹 과정 중 가장 해맑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왜? 난 집에 갈거였으니까. 하하하하하 



아래의 글은, 내가 트레킹 중에 메모한 것들이다. 다시 읽으니 그 때의 감동과, 몸과 마음의 지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산은 언제나 그 곳에 있으니 아쉬워 말자. 그리고 충분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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