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변화 거울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연. 2016. 9. 12. 22:13

퇴사를 하고 여행 준비랍시고 머리를 쥐어싸매는 동안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화두가 몇 가지 있었다. 


짧게는 2년 2개월, 길게는 약 5년, 더 길게는 20대 청춘 내도록 나는 한 길을 걸어왔다. 최근 2년만을 생각한다면, 나는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 숨이 곧 막힐 듯 말 듯한 위태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물론 매 시간 매 분 매 초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나의 삶은 발전과 성장의 여지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틀 속에서 빡빡하게 이어졌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장기여행을 결심하고,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퇴사다. 지원자를 모집하고 면접을 보고 고심 끝에 후임자를 뽑았다. 그러는 과정 동안 온갖 망상적인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타 그리고 제3자들에 대한 것인데, 내가 모든 것을 망치지 않았을까, 더 나은 사람을 그들은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등. 그 동안 내가 보낸 시간들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괜히 신경쓰이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다. 어쩌면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까지 살아왔는데 이제는 돈을 벌지 않기 위해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잘못되면 어쩌나 과연 좋은 선택이었나 하는 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매우 홀가분함이 느껴졌는데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재미 없게 일을 했었는지도 깨달았다. 


퇴사라는 큰 변화로 인해 파생되는 온갖 망상과 불안들이 한바탕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는데 꽤 나쁘지 않았다. 특히 후임자, 즉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갇혀 있던 내 2년2개월을 속시원하게 인수인계를 해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나의 헛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안정적인 내 세계 내 공간이 낯선 타인에게로 열리면서 새롭게 유입되는 공기가 불편하고 불쾌하면서도 신선하였다.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를 통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익숙한 생활, 타성적인 일에 젖어 있었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타인을 통해 바라보는 그 익숙한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교정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보낸 그 시간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구나, 나 그렇게 못하지 않았구나, 나 잘 걸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온갖 감사함이 밀려왔다. 내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나 혼자만의 에너지로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에너지 덕택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에게는 더 큰 변화와 더 큰 생각의 거리들이 필요하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이 과정을 잘 넘기고 더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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