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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14일간의 짧고 조촐한 기록

이동경로 : 호치민 2박 ㅡ 껀토 2박 ㅡ 달랏 9박 ㅡ 호치민 턴 후 발리로 떠남 그 곳에서 나와 치앙마이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넘어가 하루 밤 지낸 후 베트남 입성. 베트남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엉덩이가 너무너무너무 무거워서 계획했던 곳 반 이상을 가지 않음. 베트남의 무이네, 푸꾸억 섬, 다낭, 호이안, 훼 등을 거쳐서 라오스 팍세로 넘어간 다음, 캄보디아로 가겠다던 나의 장대한 꿈은 처참하게 무너짐. 베트남에서는 거의 메모를 하지 않아 회상에 의지하여 기록 시작.

떠남 2017.03.01

[그 곳] 6. 함께한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헤어짐

그 곳을 떠나온 지 어느 덧 두 달이 다되어 간다. 괜히 어딜가도 그 곳만한 곳이 없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만한 사람이 없고 그랬다. 어딜 가도 그 곳과 비교되는 그런 저런 시간이었다. 그 곳에 있던 당시에는 하루하루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떼우고 빈둥거리며 게으르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들을 했다 싶다. 11월 중순을 지나서부터 약 한달 정도 스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균과 모모씨는 숙소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어 매우 분주했다. 문제의 장기수분들의 집에 기거하기도 했고, 뉴페이스 능력녀(그녀를 묘사하려면 한 두 줄로는 안되니 세글자로 수퍼압축함)와도 자주 어울렸다. 여기 저기를 쏘다니고, 온갖 한국 음식들을 해먹고, 여러 번 숯불을 피우고, 눈꼽도 채 떼지 않은 상태로 대충 만나 ..

떠남 2017.02.28

[그 곳] 5. 연민, 변명

12월 말. 이모에게 생전 처음으로 편지를 쓰다가 눈물이 터졌다. 해맑게 이 곳의 행복한 시간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너무도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들과, 뿌리 깊은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한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심리적인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만하면 됐는데, 뭐가 이다지도, 아니 아직까지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기분이 좋지 않다.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대체 무엇에 그렇게 쫓기듯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버린 돌덩이 마냥 세상의 온갖 힘겨움을 짊어 안은 것처럼 살았을까. 이 서러움의 눈물 속에는 그 시간을 과연 이모가, ..

떠남 2017.02.28

[그 곳] 4. 반성 혹은 오만한 생각, 그 이면의 불안과 꿈

근 한 달째 되는 날. 심리학의 틀로 사람을 보는 것에 질려 도망쳐왔는데. 오히려 심리학을 더 잘 이해해서 타인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해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나는 심리학을 잘 몰랐기 때문에, 심리학의 틀로 바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망을 쳤던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을, 감정 없이, 어떤 내 솔직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상태로, 지식 그 자체만 일명 '씨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은 너무도 자아도취적으로 느껴졌고 자만과 오만의 그림자가 들러 붙어 있는 자기애적인 사람이면서 그렇지 않은 척 지식을 방패삼아 가식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듯 느껴졌었다. 그런데, ... 그 역시, 지식을 잘 이해하여 내 것으로 소화시키..

떠남 2017.02.28

[그 곳] 3. 빠이 생활 4주차

11월. 내가 빠이에서 하는(했던) 일 늦은 시각 기상 점심 - 대충 밥에 (문제의 장기수 중 한 분이 담근) 김치에 라면 / 동네 30B(약 천원) 국수집 / 스님 집(냉면이나 짜장, 된장, 수육 등) 빨래를 맡기거나 되찾기 스님 심부름하며 시간 떼우기 - 마늘 까기, 생강가루 소분, 계란 까기, 쌀, 채소, 고기, 고양이 사료 등을 사오기, 점심 또는 저녁상 차리기 멍뭉이랑 애옹이들 바라보며 웃고 잠깐 산책하기 하늘 보며 시간 떼우기 폰 오프라인 게임하기, 목숨이 다 되면 못함 독서낮술 낮잠 저녁 먹을 거리를 장봐와서 저녁을 하고 맥주 마시기 팟캐 듣기 ㅡ 주로 뉴스공장, 파파이스뉴스룸 보기라이브바에 나가서 노래 들으며 맥주 마시기 워킹스트릿 어슬렁 - 가끔무슬림 빵집 버터브레드 구입 ㅡ 이런 빵 처..

떠남 2017.02.28

[그 곳] 2. 미묘한 변화 그리고 울렁거림

9일째. 한국에서의 11월은 한 해가 끝나감에 대한 아쉬움과 쌀쌀해진 날씨로 인한 왠지 모를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끼는 달이었는데, 더운 날씨의 11월 이라니. 상당히 낯설다. 한 해가 마치 13월 14월로 주욱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이 한 해가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행 초기인데다가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이유이겠으나, 날씨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본능적으로 내 뇌는 '반팔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11월이라니? 무슨소리야' 라고 말하며, 긴 소매와 긴 바지, 트렌치 코트, 스카프를 두른 채 쌀쌀한 아침공기를 마셔줘야 아 이제 연말이구나~하는 느낌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 한다. 펜을..

떠남 2017.02.28

[그 곳] 1. 'Do nothing' 과 단상들

아마도 그 곳에 간 지 4일 째 되던 날. Do nothing, Do everything you want.빠이의 모토는 'Do Nothing' 이다. 철저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왔는데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이 작은 시골 마을은 한적하다. 일일투어를 내세운 여행사가 군데 군데 있어서 어디어디 가는지 들여다 보기는 하지만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유명한 유적이나 빼어난 경관과 같은 갈 곳이 별달리 없는 지역일 수록 일출과 일몰, 강가에서의 래프팅이나 물놀이, 약간 떨어진 곳의 산간 지형 등을 위주로 내세우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안하려고 왔는데 굳이 저런걸 왜?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떠남 2017.02.28

[태국] 빠이(pai), 괜히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그 곳'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7년 2월 마지막 날이다. 나는 지난 해 말, 빠이에서 타의에 수동적으로 못이기는 척 하며 자의적으로 꼭 두 달간 머물렀다. 우리는 그 두 달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많은 곳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썩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값지고 귀한 인연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 그 자체가 정말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시간이었다. 짧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과 많은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알게 모르게 언젠가 꼭 다시 만나는 게 당연할 것만 같고 그냥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사이였던 것만 같은 편안했던 사람들. 타국에서 그리 긴 시간을 체류하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여행이 아닌, '늘 그러..

떠남 2017.02.28

[태국] 치앙마이.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단상.

치앙마이. 10월 말. 따오에서 수랏타니 공항으로 가는 조인트 티켓(따오에서 나가는 배, 공항가는 버스표)을 예약하였고, 태국 남쪽에 위치한 수랏타니 공항에서 북쪽에 위치한 치앙마이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였다.치앙마이에서는 3일을 머물렀던가. 섬에서 바로 큰 도시로 나왔던지라, 그냥 매연 가득한 공기가 싫었고 번잡하고 상업적으로 느껴지는 님만해민도 별로였고, 그렇다고 인근 아름다운 산에 트레킹을 가거나 유명 여행지를 찾아 가려니 에너지도 없었고, 기대했던 재즈바는 국왕의 서거로 공연도 하지 않았고, 뭐 그랬다. 대신 Saturday Market, Sunday Market만 겨우 다녀왔는데, 마켓의 규모가 아주 크고 볼거리도 많아 유일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빠이로 넘어갈지, 라오스와 국경을 맞..

떠남 2017.02.21

[영화] 우리들

* 순진무구하게 "연우도 때리고 나도 때리고 그럼 또 때리고 때리고 하면 언제 놀아?" 라며 반문하는 동생의 그 대사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이야기에 짜자잔 하고 나타난 해결사처럼 느껴졌다. * 심지어 봉숭아 물도, 하늘색 메니큐어도 모두 사라져버린 손톱은 선이의 내적 갈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너무도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컴플렉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는(지아는)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자신을 과장하고 누군가는(보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 내리고 누군가는(선이는) 소극적인 자세로 묵묵히 포지션을 지킨다. * 갈등이 생겼을 때 의도하지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감정..